[역사] 종묘 답사기

등록일 2003.09.18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1. 종묘에 대해.
2. 종묘의 주요 건물들
3. 종묘 답사를 마치며...

본문내용

1. 종묘에 대해.

서울의 어느 곳을 답사할지를 고민하던 중 세계문화유산으로 저정된 우리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문화 유적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번잡한 종로3가 한 켠에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 바로 종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사당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무심히 종묘사직이라는 말을 많이 하거나 듣게 된다.

우리 나라는 농업을 국가의 근본으로 하였고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그 결과 종묘와 사직, 즉 ‘종사(宗社)’는 곧 국가의 기틀을 지칭하였으며, 국가의 흥망은 ‘종묘사직의 존망’이란 말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의 존재는 정치이념상 국가 기틀의 완성과 왕조의 뿌리를 상징한다. 여기에 제사를 지내는 종묘대제(宗廟大祭)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국가적인 행사였다. 역대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왕조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의 으뜸가는 행사이자 통치 질서의 기본이었다. 종묘는 중국에서 비롯된 제도로 왕조 시대의 정신 세계를 지배한 예제(禮制)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역대 왕조는 종묘를 가장 중요한 제사 대상으로 삼았고 그 시설물에도 궁궐에 버금가는 정성을 쏟았다.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뒤 경복궁과 동시에 세운 곳이 종묘였다. 그 만큼 새왕조에게 있어 종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종묘는 궁궐의 동쪽에 지어야 한다는 중국의 제도를 따라 경복궁 동쪽에 세웠다. 종묘제도는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건축내용에서는 우리 나라와 중국이 다르다. 중국의 건물은 옆으로 길게 늘어진 건축물도 아니고 단아하고 질박하지도 않다. 구성이 복잡하고 장식이 번잡하고 화려하다. 반면에 우리 나라 종묘는 고도로 절제되고 생략된 기법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러나 종묘는 우리 현실에 맞게 수용되면서 한국 고유의 특성을 간직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단순한 구조의 재실을 길게 연결해 장엄한 엄숙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는 군더더기 장식을 일체 곁들이지 않은 최소한의 공간 구성으로 제사 공간이 갖는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제격이었다. 유네스코는 95년에 종묘가 갖는 이러한 건축의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높이 평가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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