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갑오농민전쟁
- 최초 등록일
- 2003.09.17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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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갑오농민전쟁의 주체세력
Ⅱ. 갑오농민전쟁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향
Ⅲ. 갑오농민전젱의 역사적 의의
Ⅳ. 동학의 농민전쟁에서의 역할
본문내용
갑오농민전쟁의 주체세력은 사회신분에 있어서는 양인층과 노비를 중심으로 한 천민층이었고, 사회계급에 있어서는 소작농을 중심으로 한 빈농층이었다. 이 주체세력을 시기별로 구분 지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부민란의 주체세력은 소작농을 중심으로 한 빈농, 소농이었고, 이 외에 부농도 참가하였으며 이임, 이집강들도 참가하였다. 고부민란의 주체세력으로 소작농이 왜 이렇게 부각되는가 하는 것은 고부민란의 가장 가까운 직접적 원인을 이룬 보문사 조필영과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의 내용을 보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전봉준은 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의 방법으로서 수세륵징(수세륵징), 진황지 개간후의 과세, 부민의 대한 2만여냥 수취, 자기 아버지 비각건립비용 1천여냥을 징수, 대동미의 부정착복, 기타 낱낱이 들기 어려운 조항들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조필영의 가렴주구는 각종세미에 대한 부당한 가징(加徵)이었다. 조필영의 보운세미에 대한 불법의 가징도 자작농에 비해 소작농에게는 그 배의 부담으로 여기서 고부민란의 선두에 서서 활동할 주체 노력이 소작농이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고부민란은 이들을 주체세력으로 해서 봉건관료의 가렴주구를 반대하는 반봉건경제투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봉건관료의 가렴주구를 반대하는 경제투쟁이었으나, 반봉건 신분투쟁과 봉건적 중앙권력을 부정하는 봉건적 정치투쟁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두 번째, 제1차농민전쟁은 고부민란에 직접 연결은 되어 있으나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그 주체세력의 구성과 운동의 목표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