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현대사]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

등록일 2003.09.17 한글 (hwp) | 21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프랑스의 고립주의 정책
2.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한 외교정책
3. 대영정책과 식민지정책

Ⅲ. 결 론

본문내용

Ⅰ. 서 론

1871년에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행한 독일제국의 선포는 유럽사의 새장을 열었다. 19세기 전반, 독일이 아직 약하고 분열되어 있는 동안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 대륙에서의 주된 세력들이었다. 디즈렐리가 ‘독일혁명’이라고 부른 보불전쟁 이후 이 세력 관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1870년대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패전국으로서 세력균형의 극적인 변화에 그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맞추어 가고 있었다. 러시아는 유럽에서와 같이 중앙아시아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영국은 고립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들이 독일이 유럽에서의 지배적인 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비스마르크가 독일외교 정책을 근 20년간이나 독점했기 때문에, 독일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제 관계를 단순히 힘의 행사로 보는 그의 비교적 좁은 관점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독일의 ‘민족적 영웅’은 이 민족주의 시대에 있어서, 러시아의 가혹한 지배하에서 고통을 겪는 발틱해 연안의 독일인들의 호소를 무시했으며 또한 대독일을 만들자는 선전에도 단호하게 반대했다. 로마노프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다민족 국가들은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고려 내부의 고정된 점들이었으며, 이 시대 착오적 국가들은 독일의 이익을 위해서 보존되어야 할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민족주의적 밀렵꾼이 제국주의적인 사냥터지기로 변신한 것이다. 그의 목적은 이제 단순히 1866년과 1870년의 승리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871년 독일의 통일을 달성한 비스마르크는 독일 제국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럽 대륙에서의 평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유럽 국제 질서의 현상 유지와 프랑스의 국제적 고립을 그의 외교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는 유럽에 중대한 분쟁이 발생하여 독일이 이에 휘말려들거나 독일이 새로운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을 극력 피하고자 했으며,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이 유럽에 분쟁을 일으킬 것을 경계하여 프랑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프랑스의 눈을 해외고 돌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의 열강의 이해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동맹이나 협약의 그물을 쳐서 자신이 외교적 목표들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그가 1890년 독일의 재상 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20년간의 유럽의 국제 관계는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참고 자료

1) 採求堂, 『독일근대사』, 윌리엄카저
2) 정해본, 『독일근대사회 경제사』,지식산업사
3) 金 正, 『근대외교사』, 好樂社
4) 홍영주,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학위논문, 197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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