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통치의 실체
- 최초 등록일
- 2003.09.12
- 최종 저작일
- 2003.09
- 4페이지/ MS 워드
- 가격 1,000원
목차
가. 식민지 지배체제와 이념
나. 1910년대 : 식민지 통치 기반의 확보
다. 1920년대 : 경제 수탈과 민족 분열 정책
라. 1930년대 전반 : 식민 통치의 문제인식으로 인한 체제전환
마. 1930년대 후반 이후 : 민족 말살 정책
본문내용
1. 일제 식민 통치의 실태
가. 식민지 지배체제와 이념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지배의 특성은 경제적 수탈과 민족문화 말살에 있었다. 식민통치의 양상은 일제가 직면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약간씩 변형되기도 하였으나, 일시적인 문제에 불과할 뿐 기본적인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오히려 강화되어 나아갔다. 그리하여 그것은 한국에 대한 직접지배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직접지배의 방식은 총독부를 식민지에 두고 통치하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총독은 한국에서의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독점하고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 시행되는 법률들을 총독의 명령, 즉 제령에 의해 대신할 수 있었다. 총독을 보좌하는 최고 직책으로는 정무총감을 두어 정무를 총괄하고 총독부의 사무를 감독하도록 하고 있었다.
일제는 전국을 13도 12부 713군으로 나누었다. 도지사는 대부분 일본인이 차지하면서 한국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인 참여관을 두었으나 실권이 없었다. 반면 군수의 경우는 한국인을 참여시켰으나, 이러한 경우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는 국장은 일본인을 임명함으로써 한국인들을 행정의 핵심으로부터 배제시키었다. 또한 지방행정조직의 말단에 면을 두어 향촌사회를 붕괴시키고, 군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지방행정체계를 변화를 시켰다. 이는 식민지 통치권력이 최말단까지 침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한국의 치안 유지는 헌병경찰이 맡도록 하였다. 실제로 일제가 1905년 한국을 바로 식민지화하지 못하고 보호국이라는 과도적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은 한말의 의병전쟁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의 저항에 대처하기 위하여 군사경찰과 민간경찰을 일체화한 헌병경찰이 민간의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 헌병경찰제도는 위협적인 외양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중들을 면밀히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더 나아가 3.1운동이 일어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어 이후 보통경찰제로 전환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