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임나일본부에 대한 조사

등록일 2003.09.10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내용정리가 잘 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1)임나일본부설의 내용
(2)임나일본부설의 근거와 반박
*일본서기
*광개토대왕비
*송서
*칠지도
(3)여러학설들
*출신기관설
*기마민족설
*가야의 왜설
*백제군사령부설
*외교사절설
*분국설

3.결론

본문내용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여기에서는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4가지에 대해 살펴 보고 그에 대한 의문점 및 반론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일본서기(日本書紀) :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물 가운데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이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7세기 중엽에 천황의 권위가 확립된 후 천황가를 미화하기 위해 편찬된 책으로서, 일본학계 내에서도 그 신빙성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대체로 5세기 이전의 기록은 신화적인 전설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내용
신공황후가 보낸 왜군이 369년에 한반도에 건너와 7국과 4읍을 점령하였다.
임나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에 임나가 신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공황후가 정벌한 7국의 지명을 고증한 결과 그곳이 당시의 가야 지역이었 으며 따라서 임나는 가야를 가리키는 것이다.
일본서기에 백제·고구려·신라·임나의 사신들이 왜에게 공물을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점
일본부란 용어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일본이란 국호는 7세기경에 비로소 나타난다. 따라서 4세기에 이미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 천황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본서기 편찬의 산물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년(紀年)에도 상당한 조작이 가해져 있다.
ex) 신공황후가 임나를 정벌했다는 369년은 일본서기에는 249년으로 기 록되어 있다.
어떤 인물은 244년간이나 관직에 복무하고 있었을 정도이다.
일본서기보다 8년 전에 편찬된 고사기에는 신공황후의 임나정벌과 같은 중요 한 사실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 이 비가 일본학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만주에 밀정으로 파견되었던 한 일본군장교가 1884년에 비의 탁본을 일본에 갖고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일본 육군참모본부는 5년간의 비문해독작업 끝에 비문의 내용을 발표하였던 바, 그 결과 광개토대왕비는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에 관한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귀중한 증거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내용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에 걸쳐 왜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활동을 벌이다가 고구려에 패한 기록이 몇 군데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왜군이 한반도 남부를 장악하고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 신묘년기사(辛卯年記事).
-신묘년기사란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이위신민)>을 말하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너무도 구구하여 낱낱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세 유형으로 요약된다.
제1형은 문장 전체의 주어를 왜로 보아 <왜가 신묘년(391)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가야(?),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4세기 후반의 왜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가 기정사실화된다.
제2형은 앞부분의 주어는 왜로 뒷부분의 주어는 고구려로 보아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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