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기행

등록일 2003.09.07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신석기 시대의 유적에 고인돌이라 어울리지 않은 조형물임에 불구하고, 이 고인돌을 만들 당시의 그 신선함은 아직까지 서려있는 듯 하다. 어림잡아 높이 약 5m 가량에 너비는 10m에서15m 정도로 덮개돌 위에는 비둘기 때가 숨죽여 있고, 받침돌 사이로 나 이외의 이 암사를 구경하고자 하는 인파로 북적 거렸다. 나에게는 신석기 유적에 고인돌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고인돌 아래를 지나서고 조금 후 발걸음이 다은 곳은 움집들이었다. 수개의 복원된 그 속에서 과연 신석기인들의 생활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렬로 줄을 선 움집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대인의 신장에 맞추어 원형의 1.5배의 크기로 제작하여 한결 보기는 수월 하였지만, 실제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은 오래도록 남았다. 원뿔의 움집이 곳곳마다 하늘을 향해 소리칠 때, 신석기인들의 자연물 숭배 사상에 대한 모습을 잠깐이나마 엿 볼 수 있었다. 마치 중세 고딕 양식처럼 하늘과 가까워지려는 신석기인들의 모습은 인간들의 미래에 대한 본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였다.
*원하는 자료를 검색 해 보세요.
  • [역사] 암사동 유적 답사기 3 페이지
    우리의 조상임이 확실함에도 문자 시대 이전에 살았다는 이유로 본인은 그들을 원시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떠올릴 때도 털없는 원숭이가 구부정하게걸어다니는 정도로 밖에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원숭이처럼 취급해 ..
  • 암사동 선사유적지 5 페이지
    2. 주거지 암사동유적은 가장 대표적인 중서부 최대 규모의 주거지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움집터는 대개 큰 강이나 바닷가의 낮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나 강가의 모래땅에 위치한 암사동 유적에서는 30기의 수혈주거지..
  • 문화유적지 답사보고서 10 페이지
    1. 신석기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암사동 선사유적지 - 흔히 신석기시대를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신석기시대에는 인류 역사상 문명의 발전을 결정지은 혁명적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토지의 생산성이 ..
  • 암사동 견학 4 페이지
    이런 유적지 한 귀퉁이에 그런 것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아이들도 와서 휙 둘러보고 놀다 갈 것이 아니라 짧게라도 직접 원시체험을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멩이도 깨보고, 불도 피워보고, 움..
  • 암사동 신석기 유적 9 페이지
    신석기 시대의 사회와 경제, 종교, 그리고 유물에 관해 간단하게살펴보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신석기 시대는 거대한 변혁의 시기이며, 자연 혹은 신과 결별하는 첫 갈림길이었다. 물론 신석기 시대에도 자연에 대한 의존은 필..

이 자료와 함께 구매한 자료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