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북한의 對서방국가 및 EU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등록일 2003.09.01 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 론

Ⅱ . 북한의 對서방국가 외교 배경과 목표
1. 자주외교 확대
2. 경제발전을 위한 외화획득

Ⅲ. 북한과 서방국가 및 EU관계 개선 과정
1. 북한의 관료에 대한 자본주의교육 확대
2. 북한과 EU간 관계 개선

Ⅳ. 북한의 對EU관계 개선 이후 남북관계 전망
1. 당국간 회담 재개 가능성 제고
2. 남북 경제협력 관계 회복 계기 부여
3. 국제사회에서의 남북협력 증대 가능성
4. 남북관계에 대한 장기계획 수립 필요성 등장

Ⅴ. 결 론

본문내용

2001년 5월 14일 유럽연합(EU)이 대북수교 결정을 함으로써 북한은 EU I5개국 중 프랑스와 아일랜드를 제외한 13개국과의 연쇄적인 수교와 함께 對유럽외교의 大尾를 장식하였다. 북한이 서유럽국가와 수교를 시작한 시기는 스웨덴을 비롯한 9개국과 수교했던 197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북한이 서유럽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치중한 이유는 '세계혁명력량과의 련대성 강화'라는 측면외에 경제발전에 필요한 차관도입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차관에 의한 경제발전 전략은 사회주의체제 자체의 모순외에 세계적인 유가파동으로 인해 실패하고 '채무불이행 국가'로 낙인찍히는 결과만 초래하였다. 북한이 자본주의국가와의 거래나 '자본주의화' 학습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김일성이 '외화벌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는 1950년이었다.1) 가공공업 발전에 필요한 외화 확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국가들에 금을 비롯한 유색금속을 팔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김일성의 의도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무산되었다. 미국이 1950년 6월 28일 대북 '수출통제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2) 이후 자본주의국가들의 북한과의 교역은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북한 경제는 완만한 형태를 띠기는 하였지만 침체가 지속되었다. 결국 북한 경제난의 원인은 근본적으로는 북한이 '자력갱생로선' 채택에 있지만 자본주의국가들의 대북 경제제재와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89년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권 붕괴는 북한의 최종 '은신처'를 파괴해 버렸다. 북한경제는 급전직하로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1994년 북한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일성 사망, 1991~1997년간에 발생한 자연재해 및 수십만의 아사자 발생은 김정일로 하여금 '고난의 행군'3)이라는 배수진을 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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