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여성사 연구

등록일 2003.08.31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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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의 연구


정치사 - 역사시간에 고대 아테네를 배우기도 전에 학생들은 그 사회가 민주정을 이룩한 사회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테네의 민주정에 참여한 시민이 모두 남성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 우리들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고대였으니까. 고대사회에서 여성이 아닌 남성이 중심이 되어 정치적 구심점이 하나의 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렇게 의문점을 제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1789년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자유와 박애, 평등을 기조로 한 혁명은 혁명의 과정에서 '인간과 시민으로서의 권리 선언'으로 채택되었고, 그 사건은 역사상 '최초'의 근대 평등 사회를 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자연권을 가진다는 그 인간의 범주에 여성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랑케에 따르면 진정한 역사가는 기록이 전하는 바 이상을 기술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역사는 철저한 사료주의에 입각한 역사로서 사료가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사료는 역사와 시대를 보여주는 보편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사실들의 기록으로 사료 속에서 보여 지지 않는 모습은 인간들의 모습이기 보다는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사료를 거울로 하는 남성들의 모습일 뿐이다. 또한 역사 기술에 있어서의 사가들의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한 객관주의를 기본 틀로 정하였다. 전통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나서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가들의 대부분이 남성이다. 기존의 역사 연구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경우는 그러므로 당연하다. 왜냐하면 19세기 이전 여성들의 기록이란 거의 전무하다.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식자층을 형성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식자층을 제외하고도 여성이 하나의 사건의 외각으로서도 기록에 실릴 만한 비중을 차지할 수 없었다. 고대사회에서 여성은 철처한 부계중심의 사회의 부수적인 존재였을 뿐, 모계사회라는 말이 없듯이 아주 먼 옛날이라고 알고 있는 고대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것은 있으면 있는 존재로서,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요소와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중세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질적 향상은 가져왔다. 옷을 예쁘게 입는 존재가 되었고, 조금은 사회적 존재로서 누군가를 만나는 주체적 역할을 가끔 담당하기도 했으며, 그러한 만남에 등장하게 되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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