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한일어업협정

등록일 2003.08.27 훈민정음 (gul) | 8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어업협정이 조인되기까지 흐름
2.한일어업협정 합의 발표문
3.한일어업협정의 재고할점
4.한일어업협정 관련일지

본문내용

[98년 어업협정이 조인되기까지 흐름들은?]
1998년 9월 25일 韓日 외무장관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에 서명을 했으며, 이후의 절차는 양국 국회의 동의를 거친 후 비준서를 교환하는 날부터 협정이 발효가 된다. 이에 12월 11일 일본 중의원(일본의 국회)은 본회의를 열고 새 한일어업협정을 승인했으며, 한국 국회의 비준동의를 남겨두고 있다. 아울러 지난 1965년 6월 22일에 도쿄에서 조인된 구 한일어업협정은 1998년 1월 22일 일본의 일방적 파기 선언으로 파기 되었고, 파기 된 날부터 1년후인 1999년 1월 22일까지 그 협정이 유효하므로, 양국 국회의 비준반대가 없는 한 1999년 1월 23일부터 신 어업 협정은 그 효력을 발생할 예정이다.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조인된 한일어업협정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어내기 위한 자발적으로 감수한 불평등조약으로 평가된다. 박정희 정권은 1960년 4월 혁명의 역사적 정당성을 억압한 5.16 군사 쿠테타에 의해 탄생된 군사정권이었기에 정권의 안정적 기반을 위해 우호국인 미국의 지지가 필요했으며, 경제개발과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자금의 필요성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 이후 동북아시아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유대강화가 필요했으며, 일본은 1951년의 센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이후 한일 국교정상화가 당면 현안이 되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체결된 65년 어업협정을 살펴보면, 한국이 기선으로부터 12해리까지의 연안수역만을 한국어민들의 전관수역으로 할 수 있도록 일본으로부터 허가를 구하는 것이 1조의 내용이었다. 당시 세계적인 추세는 1965년 4월 26일 니카라과가 자국 기선에서 20해리 까지의 수역을 배타 어로수역으로 선포하는 등 20해리를 전관수역으로 하고 있었지만, 어업협정에서는 단지 12해리만을 전관수역으로 설정하였다.(1해 리는 1,852m이다)
협정 2조에서는 <공동규제수역을 설정하여 한국연해어장에서만 일본과 공동소유>임을 밝혔다.
일제 36년간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노획한 한국 어장을 일본어장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어획실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불평등 극치의 조항이다. <일본 어부들이 협정 이외의 수역에서 범칙하면 일본 정부가 자국법에 의하여 자국 법정에서 재판한다>는 4조의 조항이다. 이른바 자기나라 앞바다에 오는 외국 어선을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을 연안국이 갖는 경우인 '연안국 주의'의 상대적인 개념인 '기국주의'의 원칙이다. 한국정부는 '연안국 주의'를 강조했지만, 당시의 한국측 어선들의 낙후된 장비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장비로 한국 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일본의 주장이 관철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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