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3.08.24 한글 (hwp) | 1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머리말

몸말
Ⅰ. 마녀사냥의 실체
Ⅱ.마녀사냥의 진행과정
Ⅲ.마녀사냥의 원인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하나의 폭풍이 중세 말엽 유럽을 강타했다. 이 폭풍은 광기어린 학살로 한 시대를 규정했다. 수십만명의 여성이 이 광풍(狂風)에 휩쓸려 아무런 잘못없이 화형장에서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며, 살아남은 여성들도 불안과 공포에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했다. ‘광기어린 대 학살극’ 이것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마녀사냥’의 진실이다. 이 ‘대 학살극’으로 인해 제네바에서는 3개월 동안 5백명(1513년), 트 레이브즈(독일)에서는 7천명이 불태워지며 두 개의 마을이 전멸되고, 다른 두 개 마을에서는 여자 2명만이 살아 남았다.(1580년) 작센에서는 하루 사이에 1백 33명(1589년), 알사스의 마을 상 아라만에서는 1년 동안 2백명 이상(1596년), 라부르에서는 4개월 동안 6백명(1609년),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5천명(1615~55년), 뷔르츠부르크에거는 8백명, 밤베르크에서는 1천 5백 명... 이러한 마녀사냥의 특이한 점은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을 표방한 르네상스의 최전성기에 휘몰아쳤다는 것, 이 광풍(狂風)의 선두주자였던 이들이 교황등의 성직자의 일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왕, 귀족, 당대의 일류의 대학자, 재판관, 문화인 모두였다는 것, 마녀의 존재는 옛날부터 존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교회와 국가 그리고 공적 권위와 권력들에의해 전국적, 전 사회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몸말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옛부터 알고 있었던 마녀의 모습이다.

Ⅰ. 마녀사냥의 실체
사실 마녀라는 존재가 중세 말기에 특수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마녀탄압 역시도 중세 말기에 특이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마녀탄압의 가장 오래된 예는 기원년전 1200년의 이집트에서 있었고, 그리스에서는 데모스테네스의 시대(BC 4세기)에 한 사람의 마녀가 처형되었고, 로마에서는 네로와 카라카라 황제에게 심하게 박해 받았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에 개종한 직후의 콘스탄티누스 황제(AC 4세기)와 프랑크 왕구의 샤를르대제(AC 9세기)도 주술을 금지한 엄격한 법령을 선포하는 등, 마녀와 그 주술에 대해 탄압과 박해를 가한 예는 드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과 박해는 마녀 자체에 대한 것이

참고 자료

마녀의 문화사. 다빈치. 2001
마녀사냥.
이브의 역사
종교읽기의 자유 중 ‘마녀에 관한 몇 가지 진실’ 박규태 외. 청년사. 1999
여성에게 문화는 있었는가.(이케가미 슌이치 2000.)
여성과 사회 6호. 1995.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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