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춘화에 대하여

등록일 2003.08.22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도입

*춘화란

*김홍도의 춘화첩

본문내용

춘화란?
춘정화(春情畵)·춘의화(春意畵)·운우도(雲雨圖)라고도 한다. 춘화에 대해 학술적인 관점에서 정리 또는 그 개념을 규정한 사례는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남녀간의 성애 및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은 그림을 일컫는 경우가 많으며, 서구의 에로틱 아트를 동양권의 춘화와 비교할 때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춘화의 기원은 기원 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대(漢代)의 한 왕자는 자신의 접견실을 벌거벗은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그려놓은 병풍으로 장식했다고 하며, 한의 재상 진평(陳平) 역시 향락용으로 춘화를 그렸고, 당대(唐代:618~906)에는 기방의 머리병풍으로 춘화가 많이 그려지고 사용되었다.
특히 도교에서는 여러 여성과 다양한 방법으로 성행위를 가짐으로써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바, 이러한 생각은 6, 7세기경 인도에서 풍미하던 밀교(Tantrism)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대의 많은 문학작품이 성희를 소재로 집필되고 그 속에 그려진 삽화의 경우 남녀의 육체를 매우 사실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채색 또한 화려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13세기 유교가 일종의 종교로 정립함에 따라 노골적으로 성애를 다룬 소설과 그림이 사라진 대신 바늘에 실을 꿰는 여인을 돕고 있는 연인처럼 성행위를 매우 상징적, 은유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춘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호색문화가 크게 성행했던 명대(明代:1570~1640)로서 채색목판화 기술의 발달에 따라 춘화의 제작과 보급은 다시금 활발해졌다. 이 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당인(唐寅)과 구영(仇英)은 완전히 벌거벗은 남녀가 여러 가지 체위로 성행위를 벌이고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들의 이러한 그림은 후에 솜씨가 빼어난 많은 장인들에 의해 채색목판화로 모사되었으며, 1606년에 간행된 《풍류절창(風流絶暢)》은 24개의 채색판화로 구성된 것으로서 당인의 《춘투도(春鬪圖)》를 모본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당대의 풍류문인들은 이러한 춘화첩에 시를 겻들이기도 했으며, 이 화첩은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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