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신라역사] 화랑세기에 의해 깨어난 신라역사

등록일 2003.08.18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화랑세기의 실체를 포석사의 연구중심으로 접근해서 적어본 레포트입니다. 참고자료에서 보시다시피 정말 많은 자료와 관련 근거들을 들어서 적은 레포트이며 정말 잘 정리해서 작성해놓은 것이라서 화랑세기나 포석사에 관한 레포트를 작성하시는 분들에게 거의 완벽한 자료정보 제공을 해드릴 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음하는 바램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포석정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 6차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2.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온 포석정 기록
3.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온 포석정 기록에 대한 비판
4. 신라의 성지, 남산에 위치한 포석정
5. 포석정은 어떤 곳인가?
6. 화랑세기가 밝힌 포석정의 명쾌한 실체 : 포석사

결론

본문내용

삼국사기에서 포석정을 사당이 아닌 놀이터로 규정한 것은 사치와 방탕함을 신라멸망의 한 원인으로 보고 고려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찾기 위한 고려인의 눈이었다. 그렇게 포석정은 사치와 방탕함을 상징하며 1300년 동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화랑세기를 통해 포석정의 실제 모습을 찾아주기만을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신국의 도 역시 현재 우리의 눈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화랑세기를 통해서 신라인이 말하는 신라를 바라봐야 한다.
화랑세기를 모르고 지나갔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해진다. 화랑세기를 통해 신라인의 숨결과 채취가 스며들어 나에게도 신라인을 바라보는 지적인 힘과 안목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료가 늦게 나와 그동안 연구를 잘못된 방향으로 했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러나 자료가 주어졌고 그 신빙성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성과가 이루어졌는데도 권위와 그동안의 연구 업적을 위해 이를 금서로 본다거나 위작이라 평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가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된다.

참고 자료

1. 이종욱,「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서울 : 김영사, 2000)
2. 김부식,「신편 삼국사기 상」, 고전연구실 옮김(서울: 신서원, 2000)
3.국사편찬위원회,「고등학교국사(상)」(서울:대한교과서주식회사,1996)
4. 일연,「삼국유사」, 박성봉·고경식 역, (서울 : 을유문화사,1996)
5. 한국고대사학회 편,「한국고대사연구」(서울 : 서경문화사, 1997)
6. 경주문화원,「동경통지」(경주 : 대한인쇄출판사, 1990)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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