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三韓)의 뿌리에 관한 소고(小考)

등록일 2003.08.08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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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삼한(三韓)이란 명칭은 나기(人民)들의 터전을 세명의 한(韓)이 다스렸기 때문에 붙혀진 명칭이다. 우리와 혈통적으로 같은 계통의 선비(鮮卑)나 흉노등도 터전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던 습속(習俗)이 있어왔다. 삼한(三韓)이란 세명의 가한(可汗)이 터전을 나누어 다스렸다는 것으로 뒷날 국명(國名)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우리민족 최초의 국명은 전사(前史)에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수리' 혹은'수리말','속말','수말'이며, 터전이라는 뜻이 있는 '고리'로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리'는 '골'이나 '고을'이라는 말에 연유하여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 있어 '마을'중에 으뜸마을이 '수리골'이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수리골'은 '시골'로 전이되고 '시골'은 뒷날 '서라벌'과 함께 '서울'로 전이되었던 것이다.

1. 글감
흔히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기(古朝鮮紀)에 연유하여 BC 2333년에 건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이른바 중국사료가 아닌 우리의 사료인 고기(古記)를 인용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고기(古記)가 고조선에서 언급하다가 뒤에 북부여에 가서 다시 고기(古記)를 들추고 있다. 그 가운데 마한(馬韓)이나 이른바 사군(四郡:중국사료에서도 사군이라는 것의 기록도 서로 일관되고 있지 않다. 이문제는 추후로 거론하겠다.)과 말갈등에는 모두 중국사료를 들추고 있다. 아마도 고기(古記)는 단군과 관련하여 북부여에 이르는 역사를 다루고 있었으며, 삼한(三韓)이나 삼국(三國)을 전후로 한 역사의 사료가 미비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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