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화]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기원

등록일 2003.07.31 MS 워드 (doc)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들어가며
제1장 계몽사상과 혁명, 혁명과 계몽사상
제2장 공론 영역과 여론
제3장 출판의 방식, 인쇄소와 문필영역의 체계
제4장 책이 혁명을 만들었는가?
제5장 비기독교화와 세속화
제6장 왕의 탈 신성화
제7장 새로운 정치 문화
제8장 혁명에 문화적 기원이 있는가?

본문내용

저자는 과거 토크빌이 주장했던 종교적 혁명과 같은 소명에 불타는 독특성을 프랑스 혁명이 만들어 냈음(18세기에 퍼진 무신앙은 기독교의 힘을 잠식해 비기독교화 시켰다는 것이다.)을 주장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먼저 “비기독교화라는 것은 이전에 프랑스가 기독교화 되었다는 것을 가정하는데 과연 프랑스는 기독교적이었는가?”라고 제시한다. 즉 당시 기독교는 관행과 교리의 혼합물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카톨릭 종교개혁 이후 초보적이지만 광범위한 종교 관행들이 시행 되면서 근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 영속성의 종교는 하나의 문화적 토대를 가진 독특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반드시 보편적인 종교적 열망을 의미하는가?
유언장 덕분에 죽음에 대한 태도는 변화가 일어난 것도 비기독교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언장 서문과 기도문들은 기독교적 담론구조의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혼전 임신 비율의 증가나 비적출 출산이 도시와 농촌에서도 매우 급격히 증가하여 가톨릭의 윤리규범이 약화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은 프랑스에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도 같은 시기 일어 났으며 다른 기독교 국가에서도 이러한 예가 발견되므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독교에서 이탈한 이유를 살펴보면 얀센주의자와 반얀센주의자의 갈등에서 오는 신앙의 권위와 확신의 결여와 18세기 후반 인구 이동으로 인한 본당이 쇠퇴한 것이다. 즉 18세기 후반의 기독교의 포기와 이탈은 사회적 유용성과 절박한 양심의 요구에 세워진 자율적 윤리에 비추어 볼 때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관행이 쇠퇴한 징표로 볼 수 있다. 사제 수의 감소와 예수회 학생의 감소 등은 기독교적 소명의식의 위기로 생각되었으나 이도 상업의 발달로 과거 귀족이 차지했던 성직자 자리를 부르주아의 아들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성직자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 그 원인이 있고 후자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이러한 차이와 대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프랑스를 변형시켰던 대규모적이고 심각한 세속화가 탈신성화로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저자는 반종교적인 정열과 교회에 대한 계몽철학자들의 맹렬한 공격을 이성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라고 질문 한다. 존재 방식의 가장 심오한 변화가 명확하고 독특한 사상의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란 것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이성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혁명 이전에 이미 신앙과 관행의 세속화 과정은 이탈과 전이의 과정을 통해 작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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