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남북조 동란

등록일 2003.07.31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 들어가기 (남북조 시대)
★ 내용보기 (남북조 내란)
★ 정리하기(남북조 합일)
★ 남북조 정윤(正閏)론

본문내용

★ 들어가기 (남북조 시대)
가마쿠라(鎭倉) 바쿠후를 멸망시킨 고다이고(後醴幽1288~1339) 천황은 고대적인 천황제와 귀족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천황 중심의 정치를 부활시켰으나 이에 불만을 품은 아시카가 다
카우지(足利)의 반란으로 천황은 요시노로 탈출하게 된다. 1336년 다카우지는 교토에 새로운
천황으로 고묘 천황을 세우고 정이대장군이 되어 막부를 세운다. 또한 교토를 탈출한 고다 이고 천황은 요시노에 조정을 세운다. 이후 각각 남조와 북조로 대립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남북조 시대는 가마쿠라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의 중간에 해당되는데, 넓은 의미로 무로마치 시대에 포함된다.

★ 내용보기 (남북조 내란)
고다이고 천황은 가마쿠라 바쿠후가 멸망한 다음해인 1334년에 연호를 겐무(建武)로 고치 고 공가(公家)와 무사를 따로 묶어 천황중심의 정치를 행하였다. 이것을 겐무(違武)의 신정 (新政)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황중심의 정치를 갑자기 실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혼란을 불 러일으켰고, 은상을 바라고 있던 가마쿠라 바쿠후 타도에 참가했던 농민이나 무사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아사카가 다카우지는 겐무의 신정부에 반기를 들고 무사 의 봉기를 제촉했다. 관등에서 입경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격전을 거듭한 끝에 교토를 점 령하여 1336년 지표인 계통의 고묘(光明)천황을 세우고, 요시노로 달아난 다이카쿠사(大德 寺) 계통의 고다이고 천황은 그곳에서 조정을 열었다.
남조와 북조는 거의 반세기 동안 대립하고 지방의의 호족도 남북으로 분열하여 서로 싸워서 내란은 전국으로 미시게 되었다. 겐무 신정이 무너진뒤 내란의 경과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1335~48년까지는 1339년에 고다이고 천황이 사망하고 경도(京都)에 바쿠후를 개설한 년까지는 바쿠후에서 내분(간노의 소란 (아시카가 다다요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불화) 다카우지가 정이대장군이 되어 아시카가 바쿠후가 창립되고, 1339년 고이다고 천화의 사망으로 남조측 세력이 쇠퇴하자 대세는 거의 바쿠후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시카가씨 내부의 분쟁이 일어났다. 1350~52년의 간노(觀應) 연간에 정점에 달했으므로 간조의 소란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은 다카우지 집사인 고노 모로나오와 다카우지의 동생인 다다요시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바쿠후 창립 이래 정무는 다카우지와 다다요시가 분담하여 이원 정치 형태를 취했는데, 다카우지측의 제일 인자인 고노 모로나오는 당시 급진적 변혁에 대해 점진적 개혁을 취하』다다요시와 대립하고 있었다. 경기 지역의 급진적 신흥 영주들외 세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던 모로나오와 관동외 아시카가 일족인 호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다다요시의 대립은 내란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격심해졌다. 결국에는 1349년 모로나오는 다카우저에게 강요하여 다다요시의 정무를 그만두게 하고 다다요시의 집사 우에스기 시게요시도 살해했다. 이에 대해 <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1. 박경희,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 일빛, 1998.
2. 민두기, 日本의 歷史, 지식 산업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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