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갑신정변)] 갑신정변에 대한 역사적평가

등록일 2003.07.31 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400원

소개글

좋은분들이 사용하셨으면 좋겠네요...^^

목차

Ⅰ.서두

Ⅱ. 본론
1. 개화당의 대두와 정국의 갈등
2. 정변의 준비와 경과
3. 한성조약 체결
4. 갑신 정변 연구의 평가 쟁점
일본에서의 평가
5. 과제모색

Ⅲ. 결론

본문내용

1876년 12월 박규수 사후에 개화파는 점차 의견과 노선의 대립이 생겨 온건 개화파와 급진개화파의 두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온건개화파는 조선사회가 점진적으로 개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온건노선을 취하였고, 급진개화파는 조선사회가 적극적이고도 급진적인 방향으로 개화되어야 한다는 급진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당시 執權勢力이었던 전자는 중국의 자강운동(양무운동) 같은 방식을 따르고 하였고, 후자는 주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따르려 하였다. 이에 급진개화파는 자파를 개화당 혹은 독립당으로 부르고 온건개화파를 사대당 혹은 수구당이라 불러 각기 차별성을 부여하였다. 온건개화파에 속한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이조연 등으로 개항 이후 나라의 중요정책을 결정하던 인물들이었다. 급진개화파의 인물들로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있었다

불행히도 "아시아의 프랑스"를 지향한 갑신정변은 실패하였지만 개화사상 그 자체 및 개화파에 의한 부분적 개혁의 성과는 정변후의 시기에 있어서도 일련의 부르조아 민주주의 운동 중에 계승되어 1894년의 갑오개혁, 그 후에 계속된 독립협회 및 만국공동회에서는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정변후의 역사과정에는 많은 변화, 변동이 있고 미국에 망명한 서재필은 한국인의 입장을 떠나서 미국시민으로 되고, 박영효는 1910년이후 귀화로서 일본귀족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그것을 갑신정변에까지 확대시켜 정변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물론 역사연구에 있어서 올바른 방법 및 입장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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