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역사] 일제하 한국영화

등록일 2003.07.21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200원

목차

제1장 영화의 유입과 조선영화의 시작(1903 ∼1919년)
1. 활동사진의 조선 유입
2. 활동사진 주체와 환경

제2장 조선영화의 걸음마(1919∼1926)
1. <의리적 구투>와 연쇄극 시기(1919∼1922)
2. 무성영화 전기 (1923∼1926)
3. 조선총독부의 영화검열

제3장 조선영화의 본격적 전개(1926∼1935)
1. <아리랑>과 주요작품 경향

제4장 발성영화와 친일영화(1935∼1945)

본문내용

제1장 영화의 유입과 조선영화의 시작(1903 ∼1919년)

1. 활동사진의 조선 유입

과거 일제 강점기를 겪은 고령의 한국인들은 지금도 가끔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부르고 있다. 활동사진이란 말그대로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뜻인데, 당시 조선인들의 영화에 대한 경외심을 부분적으로 반영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조선인들에게 있어 '신기'의 대명사처럼 보여진 그 당시의 영화필름들은 주요 영화제작국인 프랑스, 미국 등의 서구 열강에서 제작된 것들로서 대부분 1분 내외의 내용도 주제도 없는 필름들을 조선으로 가져와서 자국 물품의 홍보수단이나 자랑을 내세우는 데에 주로 써먹었다. 이후 스토리나 주제가 있는 영화적 형식을 갖춘 작품들이 일본을 거쳐 서서히 조선에서도 상영되기 시작하였다. 예컨데 프랑스의 유명 영화사인 빠떼사에서 제작한 <포병행군>, <해수욕> 등 수십 편과 미국의 <뉴욕의 대화재>, <나이아가라>, <러시아의 대관식> 등이 그것이다.
조선에 영화가 처음 들어온 적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이에 대해 정리를 하자면 조선에서 처음으로 활동사진이 상연된 것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은 황성신문 1903년 6월 23일자이다. 이 신문에는 최초로 영화상영 광고문이 게재되었는데, "동대문 전기회사 기계실에서 상영하는 활동사진은 일요일과 흐리거나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상영하는데 입장료는 동화 10전"이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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