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무등산의 유적지

등록일 2003.07.19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직접 다녀와서 쓴 레포트입니다..
에이뿔 맞은 레포트입니다..

목차

1.원효사를 다녀와서
2.충장사를 다녀와서
3.충민사를 다년와서
4.증심사를 다녀와서

본문내용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충장사였다. 김덕령장군의 사당인 이 충장사는 장군이 나고 자란 석저촌, 지금의 충효동에 있다. 충효동이라는 이름은 그가 죽은 지 250년이 지난 헌종때 정려비와 함께 내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보다 앞서 현종때 억울함이 밝혀져 작위가 회복되었고, 정조 때에는 충장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사당을 지어 배향케 했다. 그렇다면 이 사당의 주인인 김덕령 장군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덕령 장군은 광주 충장동에서 출생하여 종조부 김윤제와 우계 성혼에게서 수학했는데, 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흥을 따라 고경명 의병대에 참여했다가 노모 봉양을 책임지고 귀가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형의 전사소식을 들은 장군은 내종형인 해광 송제민의 권유와 장성 현령 이귀의 천거와 전라감사의 인정을 받아 각진에 격문을 발해 의병을 일으켰다. 김덕령장군은 왕으로부터 충용장이라는 칭호를 받고 권율원수의 지휘하에 진주, 고성 등지에서 왜병을 공격하였고 거제도를 총공격했는데, 왜군이 성을 굳게 지켜 성과가 없었다. 그 이후 장군은 모함을 받아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고 고문을 받다 29살의 나이로 죽게 되었다. 그의 형은 금산전투에서 고경명장군과 함께 전사했고, 그의 아내는 다음해 왜군이 쳐들어오자 담양 추월산에서 순절했다고 하니 가히 충절의 집안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사후에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충장공의 시호가 추증되었으며, 광주 무등산에 충장사를 건립하여 그를 주인공으로 모시고 있으며, 시에서는 그를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광주 중심지의 상징 도로인 충장로 입구부터 광주일고를 지나 경열로에 연결되는 도로를 충장로로 부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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