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역사] 뾰뜨르 대제의 개혁과 국가강화

등록일 2003.07.15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뾰뜨르 대제의 등장
2. 강대국으로의 부상
1) 뾰뜨르의 초기 정치 시대
2) 대북방 전쟁
3) 몇몇 다른 대외 관계들
3. 뾰뜨르의 대개혁
1) 군제 개혁
2) 행정 개혁
3) 교회 개혁
4) 교육, 문화의 개혁
5) 재정 조치

Ⅲ. 결 론

본문내용

뾰뜨르는 행정 권한의 지방 자치를 보장하기 위해 구역을 처음에는 8개의 현으로 나누다가, 10개, 다음에는 11개의 거대한 지방 정부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719년 입법조치로 각기 보예보다(지사)를 최고 우두머리로 하는 50개의 현이 주요 행정 단위가 되었다. 이 현들은 위원들에 의해 관리되는 우예즈드(Уезд)로 세분되었다. 위원들 그와 더불어 보예보다에 딸린, 2명에서 4명까지로 이루어진 현의회는 그 지방 젠트리에 의해 그들 가운데서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모든 관리들은 봉급을 받았고, 그리하여 옛부터있던 모스크바의 국가 관례인 식읍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지방을 50개 현으로 분할하는 안건은 지방의 타성과 무지 때문에 옮겨지지 못했다. 1711년 뾰뜨르는 9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지는 원로원을 발족시켜 나라의 행정, 사법, 재정의 모든면을 감독케 했고, 짜리의 부재시 그를 대행하였다. 이 기구아래 외무부, 군무부, 상업부와 광업부를 비롯한 국가의 여러 분야에서의 행정을 맡은 9성을 두었으며, 각 부에 다시 4 - 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두었다. 1711년 뾰뜨르는 서로 업무가 중첩되는 50개의 쁘리까즈 대신에 스웨덴의 제도를 본따 정무를 담당할 꼴레기아(성)를 창설하였다. 각 성은 지식 수준이 매우 높은 외국인 1명을 포함하여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성들은 육군, 해군, 외무, 통상, 재무, 사법, 산업의 각기 구분된 행정업무를 관장함으로써, 집무과잉 상태에 빠져있던 원로원의 복잡 다단한 업무의 일부를 떠맡았다. 성은 알렉산드르 1세의 치세중에 부처(Министерство)들로 대체되기 전까지 거의 한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1. 이야기 러시아사. 김경묵. [청아]. 1993.서울.
2. 소연방 70년사. 최숭. [슬라브연구사]. 1988. 서울.
3. 러시아 노동 운동사. S.P.튜린. 강철운(역). [도서출판녹두]. 1986. 서울.
4. 러시아 정교회사. 니콜라스 쩨르노프. 위거찬(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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