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대 신법당과 구법당의 대립과 갈등
- 최초 등록일
- 2018.04.25
- 최종 저작일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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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당쟁 발생의 배경
1. 중앙관직체계와 당의
2. 사회경제의 변화
3. 돈으로 산 평화
Ⅱ. 王安石의 신법추진과 갈등
1. 神宗과 王安石
2. 王安石의 新法
3. 新法黨과 舊法黨의 대립
Ⅲ. 新法의 추이와 대립의 격화
1. 宣仁太后의 섭정과 新法黨의 퇴출
2. 哲宗代 이후 당쟁의 변질
3. 당쟁과 北宋의 멸망
Ⅳ. 新法黨과 舊法黨 갈등의 의의
본문내용
Ⅰ. 당쟁 발생의 배경
1. 중앙관직체계와 당의
宋代 당쟁의 배경 중 하나는 관료제도이다. 그 중 송대에 실시된 과거제도는 당쟁 발생의 필연성을 제공했다. 송대에는 과거의 최종시험인 전시를 통과하면 진사가 되어 관료의 자격을 주었다. 하지만 최초에는 選人이라 하여 관료견습생이 되었다가 2~3년 수습 기간을 마친 후 비로서 관원이 되었다. 그런데 관원이 되는 과정에서 고위 관료의 보증이 필요했다. 이 때의 고위 관료는 이 후에도 연대책임을 져서, 보증을 받은 사람이 어떠한 중대한 과실을 범하는 경우 그 보증이도 그것에 연좌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특별히 밀접한 관계가 맺어졌고 이후 정치행동을 함께하며 파벌을 형성했다. 결국 이러한 파벌이 붕당 형성의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벌이 이후 新法黨과 舊法黨을 나누는 기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송 건국 초기부터 있던 江南人에 대한 華北 지방인들의 인식적인 측면이 오히려 이후의 송대 붕당의 근원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송이 북중국을 점유하고 있던 後周의 판도를 이어 받아 남방의 제국을 평정하고 통일되었기 때문에 송 초기에는 화북관료들이 중앙관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남중국을 한 단계 낮은 지방으로 간주하였는데, 그 결과 강남관료들은 江外人, 南人 등으로 부르며 배척했다. 그런데 문제는 강남 지방 출신의 관료들이 송 초기부터 증대된다는 점이다. 북송 중기에 이르면 강남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많은 관료가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화북관료들보다 진보적이었으며 계산에 뛰어났기 때문에 재정분야에서 활약하게 된다. 특히 송대의 정치가 재정에 중심이 두어지면서 조정 내에서 강남 출신 관료들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하지만 화북인들의 강남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기 때문에 많은 강남출신 관료가 진출할수록 기존의 화북인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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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