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행실도, 최루백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8.01.29
- 최종 저작일
-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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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최루백과 삼강행실도의 고찰
2. 최루백의 가족사항
3. 최루백의 생애
4. 삼강행실도에서의 최루백을 통해 본 고려 문화
5. 현대의 관점에서 본 삼강행실도와 최루백
본문내용
1.최루백과 삼강행실도의 고찰
최루백, 그는 고려 인종 대에 과거에 올라 고려왕조의 폭풍전야였던 무신정권기에 관직을 하며 지냈던 인물이다. 평소 성품이 인자하고 공손하며 정직하여 왕에게 끝까지 간언을 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평소 정직하고 인자한 성품은 그의 효행에도 그대로 나타나 아버지에 대한 효행으로 그는 조선 세종 대에 편찬된 삼강행실도 효행록에 실리게 된다. 충신, 효자, 열녀 편으로 구성된 삼강행실도는 세종 대에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비를 죽이는 사건을 발단으로 백성들의 바른 풍토를 정착하기 위해 우리나라 및 중국의 사례를 가져와서 그림과 글로 이해하기 쉽게 편찬한 글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간이 많이 지나 가치관마저 바뀐 현대에는 삼강행실도가 필요 없는 것인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니다. 최근 역사 연구의 흐름이 정치사 중심의 거시사에서 문화나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인식을 연구하는 미시사 중심의 역사학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삼강행실도는 비록 현대의 입장에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잇을 것이지만 그 당시 시대 사람들의 인식과 관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료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필자는 최루백의 사례를 통해 당시 고려시대의 효의 사상과 장례 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사례를 다루기 전에는 최루백의 집안 배경과 그의 행적을 알아보고 후에 최시백에 대한 현대의 평가를 적고자 한다.
2. 최루백의 가족사항
최루백(崔婁伯, 1110년 ~ 1205년)은 고려의 문신이다. 호는 모헌(慕軒)이고 시호는 효숙공이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수주 최씨로서 수주최씨 분파에서 그의 대한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수주의 호장(戶長) 최서천(崔徐遷)의 차남 최한용(崔韓用)이 상경종사한 이후 그의 아들 최융예(崔融乂), 손자 최사위(崔士威)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관료를 배출하여 문벌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최루백은 최서천의 장남 가계로 추정된다.
참고 자료
김용선 편, 「최루백 묘지명」·「최루백 처 염경애(廉瓊愛) 묘지명」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출판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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