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환국 정치 당쟁사 붕당정치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7.06.22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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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갑인환국 : 남인의 집권
2. 청남과 탁남
3. 3복의 제거
4. 5군영과 군권 강화
5. 경신환국
6. 이이 ․ 성혼의 문묘종사
7. 서인의 분열 : 노론과 소론
8. 회니시비
9. 윤증의 3대 명분론
10. 기사환국(1689년)과 송시열의 죽음
11. 갑술환국(1694년)
12. 세자 보호론을 둘러싼 노소의 대립
13. 박세채의 탕평론
14. 사문난적 박세당
15. 화양동서원과 만동묘
16. 병신처분
17. 정유독대
본문내용
갑인환국 : 남인의 집권
- 1674년(현종 15) 8월 18일에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 숙종은 그 해 9월 현종의 묘지문을 송시열에게 위촉하였는데 이 때 진주 유생 곽세건(郭世楗)이 송시열이 묘지문을 지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림. 서인은 이에 반발하였으나 숙종은 이를 받아들여 김석주가 현종의 묘지문을 짓기로 결론을 내림. 더불어 숙종은 송시열의 예론을 오례(誤禮)로 단정하여 서인을 축출한 발판은 마련함.
- 12월 현종의 장례가 끝나자 남인들은 송시열과 서인들을 맹렬이 공격하였고 결국 송시열은 관직을 삭탈당하고 쫓겨났으며, 이듬해에는 덕원으로 유배됨. 1675년(숙종 1) 7월부터는 서인들이 일제히 밀려났으며 남인이 중요 요직을 차지함.
- 이로써 인조반정 이후 40여년 만에 서인 정권이 남인 정권으로 교체되었고, 김석주 등 외척 세력이 득세하게 되었는데 이를 갑인환국이라고 함. 이후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서인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탁남이 주도권을 잡음.
청남과 탁남
- 갑인예송은 김석주가 송시열을 제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남인의 손을 들어준 것. 더불어 허적은 청풍 김씨의 그늘 아래에서 성장한 인물. 남인들은 김석주에게 상당한 정치적 지분을 할당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남인 정권은 일종의 허적과 김석주의 연합 정권으로 볼 수 있음.
- 청남 : 허목, 윤휴를 추종하는 세력. 주론자는 3복(三福)의 외숙 오정창.
탁남 : 허적, 권대운을 추종하는 세력. 주론자는 민희, 민암. 탁남의 핵심은 ‘목민류삼가’
- 청․탁의 대립 : 이수경(청남)의 상소가 있었으나 숙종은 이수경을 파직하고 탁남을 두둔함. 이를 통해 청․탁이 서로를 비난하는 풍조가 가득해짐. 이 때 종실 영평정의 청남을 공격하는 상소가 있었는데 이로써 윤휴와 허목은 조정을 떠나게 됨. 두 달 뒤 윤휴가 만언소를 올려 허적 ․ 권대운을 공격하였으나 숙종은 탁남을 두둔함. 숙종은 탁남이 김석주와 연결되어 있고 정국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청남보다 낫다고 생각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