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와 독도
- 최초 등록일
- 2017.05.09
- 최종 저작일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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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배경
(2) 전개
본문내용
1) 간도
(1) 배경
- 19C 후반 이후, 흉년 多 + 삼정의 문란 → 해외 이주 多
- 함경도, 평안도 주민들의 간도 지방 이주 ↑ → 황무지를 개간하고 정착함
(2) 전개
- 청이 간도 거주 한민족의 철수를 요구 → 백두산 정계비에 근거하여 간도를 우리 영토라 주장
<백두산 정계비>
1712년(숙종 38년)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
‘서쪽의 압록과 동쪽의 토문을 분수령으로 삼는다.’라고 기록됨.
비석 내용의 ‘토문’이라는 말을 놓고 조선과 청나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우리는 만주 쑹화 강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했고, 청나라는 두만강이라고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함. 그러나 백두산 북쪽 지역에 우리 민족이 많이 이주해 있어 현실적으로는 조선 영토로 인정이 됨.
1909년 일제는 청나라와 간도 협약을 맺어 남만주의 안동-봉천 간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버렸다. 비석도 1931년 만주 사변 당시 일제가 철거해 버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