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생애에 대한 조사
- 최초 등록일
- 2017.03.24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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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부정적평가
2. 긍정적평가
3. 구상 (構想)
4. 추고(推敲)
본문내용
고려 중기의 대문호이며 정치가였던 이규보는 호부랑중(戶部郎中) 윤수(允綬)의 아들로 초명(初名)을 인저(仁氐), 자를 춘경(春卿),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남헌장로(南軒丈老)과 하였던 황려인(黃驪人)이다.
그의 호 백운 거사는 구름처럼 자유분방하던 그의 모습을 구름에 빚대어 표현한 것으로 새로움과 개성을 추구하던 그의 문학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호이다. '거사'란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이규보가 살던 고려 시대 불교 위주의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민(聰敏)하여 9세 때 속문(屬文)에 능하니 그때 사람들이 기동(奇童)이라 일컬었다. 그의 나이 14세 되던 해에 문헌공도(文憲公徒) 성명재(誠明齋)에 들어가 학업을 닦으니, 경(經), 사(史), 백가(百家), 불(佛), 노(老)의 글을 한번 보면 죄다 기억하였다. 명종 11년 13년 15년의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하였고, 동왕 19년(1189)의 사마시에서는 장원 급제하였으며, 그 이듬해 예부시(禮部試)에는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