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헌 (樂軒) 이장용의 시세계 연구

저작시기 2002.01 |등록일 2003.07.10 어도비 PDF (pdf) | 24페이지 | 가격 5,900원

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한문교육학회 수록지정보 : 한문교육연구 / 18권 / 169 ~ 192 페이지
저자명 : 김승룡(Seung Ryong Kim)

한국어 초록

고려후기 문학사의 균형잡힌 연구를 위하여, 원간섭기(元干涉期) 강화론(講和論)을 제기했던 문인들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13세기 전반의 성과를 잇고, 14세기를 예비한다는 역사적 의의와 함께, 현실과 명분, 민족과 외세의 경계에 섰던 지식인들의 날카로운 의식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원간섭기(元干涉期) 초기를 살았던 낙헌(樂軒) 이장용(李藏用:1201-1272)의 화친론(和親論)과 그 대원(對元) 자세의 성격을 살펴보고, 유자(儒者)로서의 오도의식(吾道意識)을 점검한 뒤, 사찰제영시(寺刹題詠詩)에 담긴 자아의 갈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당시 강화론을 제기했던 인물들의 대표격인 문인이다. 비록 불교적 취향이 남달랐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유술(儒術)을 존숭하고 오도(吾道)를 자각하며, 유자적(儒者的) 삶을 살고자 했던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는 문교정책(文敎政策)의 기획자를 꿈꾸며, 유종(儒宗)의 현창(顯彰)과, 이를 위한 학교의 설립, 그리고 영재의 육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가 돌아본 자신의 삶은 애상적(哀傷的)이었다. 주로 사찰에서 쓰여진 시 속엔 불교적 정취가 한껏 배어있어, 그의 선취(禪趣)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현재 남겨진 시에 보이는 `강산(江山)`과 `공명(功名)`의 대조 속엔 항상 현실과 선경(禪境)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자아의 서글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선월사(禪月寺)의 `해탈경(解脫境)` 속에서도, 문주사(文珠寺)에서 잠들었어도,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공명(功名)`의 흔적에 슬퍼하는 마음이 시상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고뇌를 백련결사(白蓮結社)를 통해 나누고 있는데서, 그의 정서와 문학이, 일개인의 서정에 그치지 않고, 13세기 후기 지식인들의 정서와 맞물리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 초록

For a well-balanced study on the literature of the Goryo Dynasty, it is essential to investigate into those scholars who supported amicable relations with Won Dynasty during the period of Won`s intervention in Goryo. That is because such an investigation offers an "opportunity" to appreciate the acute consciousness as well as the literature of the intellectuals who found themselves on the boundaries of reality vs cause, autonomy vs outer influence as they succeeded to the achievement of the first half of the 13th century as well as preparing for the 14th. This thesis intends to examine the peace proposal made by Rakhun Lee Jangyong who liv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Won`s Intervention, his attitude toward Won Dynasty, his approach to Tao as a Confucianist and then the personal conflict within his ego as is reflected in Sachaljeyoung-shi. He was a typical example of those literary people who supported amicable relations with Won Dynasty at the time. Though he is known to have had strong inclinations toward Buddhism, he was basically an intellectual who revered Confucian principles, was spiritually enlightened, and longed to live a life as a faithful Confucianist. In particular, he aspired to be a planner of an educational policy, dreamed of a world where Confucian principles prevail, and proposed establishing schools that would foster young promising scholars in order to achieve such a world. Nevertheless, his life as he reflected upon it was a kind that was elegiac. True, those poems that were written mostly in temples were saturate with Buddhist sentiment allowing us to understand his proclivity toward Zen. However, in the contrast of the poems Kangsan and Kongmyong, which are still extant, can we witness his disconsolate self that agonizes over the conflict woven between the reality and the world of Zen. Even the overall mood of Haetalgyong of Sunwolsa is dominated by his woe in which he laments over the lingering vestige of his desire for exploit, though he body is asleep in Munjusa. The fact that he shares his agony through Bakrungyulsa seems to indicate that his sentiment and literature are not those that are confined to himself only, but rather they seem to he interconnected with those of other intellectuals of the late 13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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