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목수석 (夏目漱石)「 우미인초 (虞美人草) 」 론

등록일 2003.07.10 | 최종수정일 2016.07.17 어도비 PDF (pdf) | 20페이지 | 가격 5,500원

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일본어교육학회 수록지정보 : 일본어교육 / 16권
저자명 : 부백

한국어 초록

『우미인초』 (虞美人草)는 일본의 근대작가 나츠메 소세키(夏目瀨石,1867∼1916)에 의해 1907년 6월 23일부터 동년 10월 29일 걸쳐 아사히(朝日)신문에 발표된 작품이다. 본 원고는 연구방법론으로서, (주제도출이론) 을 채용하여, 작품의 구조적·과정적인 내부적 상황과 작품외부의 시대적·사회적 상황 등과의 유기적인 상호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우미인초』 의 작품내세계에 내재하는 주제성에 보다 객관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을 시도한 논문이다. 본 논문의 분석 및 고찰의 결과를 정리하면 주로 다음과 같다. 『우미인초』 의 작품내세계는 우리에게 배금주의를 기조로 하는 욕망으로, 결혼약속이 있었던 사요코(小夜子)를 버리고, 후지오(藤尾)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오노(小野)가 그러한 행위·행동이 인도 (人道)에 어긋나다는 것을 자각·자책하여, 다시 사요코를 받아들여가는 사건을 제시해 주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이해를 중시하는 문명인」 인 오노가 사요코를 버리고 후지오를 받아들이려고 했을 때, 무네치카(宗近)로부터 훈계·훈도를 받게 됨으로써, 물질만능주의라고 하는 「문명」의 「껍질」로부터 벗어나 「도의」(道義)라고 하는 정신성을 획득한 행위와 행동을 선택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오노에 의한 배금주의의 문제는 그를 데릴사위로 맞이하는 것과 동시에 코노(甲野)를 내쫓고, 그의 재산을 수탈하려고 하는 후지오의 어머니와 후지오의 속셈, 그리고 그것과 동반되어 발생하게 되는 코노의 고뇌와 무네치카의 결혼문제와도 관련을 보이고 있었다. 즉, 이러한 배금주의의 문제는 『우미인초』 의 작품내 세계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주요 등장 인물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도 작품내 세계 전체를 뒤덮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와같은 쟁점들도 오노가 배금주의에 편중했던 인식을 도의의 방향으로 전환함으로써, 한꺼번에 급변하기에 이른다 오노의 훈계에 임한 무네치카는 그가 회개한 것을 인지하자, 자기자신도 명확히 후지오에 대한 미련을 버리며, 후지오는 자살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회개하여, 코노는 원래대로 가독(家督)을 유지하게 된다. 이와같이, 『우미인초』 는 도의와 물질만능주의의 갈등 및 전자의 우위성이 강조된 작품인 것이다. 1868년에 성립된 일본 명치(明治)정부에 의한 근대화 정책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구미(歐美)선진자본주의 열강들과 국제사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을 구축하기 위한 부국 강병책이었다. 경제면에 있어서, 그것은 18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기초 과정으로 한 자본제(資本制) 경제구조를 도입한다고 하는 형태가 취해졌으며, 1897∼1907년 경에는 그 확립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일본사회에서도 당연히, 부자인가 가난한 자인가 하는것을 척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고가 과급·대두 되었다. 더구나, 구미선진제국들이 약 200년을 요(要)한 자본주의화 과정을 반세기라고하는 단기간에 달성해낸 일본사회에서는 물질만능주의를 기조로 하는 가치관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그리고, 소세키는 「無學不德義라 해도 돈이 있으면 세상에서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사실로서 제시한 국민은 갑갑한 덕의를 버리고, 단지 돈을 잡아 으시대려고 하기에 이르렸다니,(중략) 옛날에는 돈이 있다고 하여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건마는‥」 (1901.4)라고 이러한 상황을 달관·기피했으며, 나아가 그의 초기작품인 『나는 고양이로다』 (吾輩は猫である,1905.1∼1906.8)에서는 신랄한 금권비판을 표출하였고, 『이백십일』 (二百十日,1906.10) 등에서는 자본가 등을 가르켜, 「일차적인 목적은 이러한 문명의 괴수를 때려죽여, 돈도 힘도 없는 평민에게 조금이나마 안위를 주는 것에 있다.」라고 하는 통렬한 격어를 작렬했다. 요컨데, 소세키는 그의 초기 작품에 있어서 화급한 서구근대화의 도입과 함께 침투해오는 물질만능주의의 풍조를 정신성이 결여된 파상적인 문명으로서 예리하게 간파하여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세키는 아시히신문사 입사라고 하는 중대한 계기에서 우선 덕의와 배금주의와의 갈등·상극(相剋)의 과정을 엮어낸 『우미인초』를 창작하여 전자의 우위성을 세상에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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