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
- 최초 등록일
- 2016.12.27
- 최종 저작일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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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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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역사적 배경
1. 수로왕 설화
2. 김수로왕과 수로왕릉
Ⅲ. 총평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대성(大姓)인 김해 김 씨의 시조이기도 한 수로왕에 대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보면 “이헌제입안사년기묘삼월이십삼일이조락 수일백오십팔세의(以獻帝立安四年己卯三月二十三日而殂落 壽一百五十八歲矣)”로 나와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삼국유사』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 까닭이 일연 스님의 잘못인지 『가락국기』를 썼던 고려 때 금관의 지주사 김량감(金良鑑)의 실수인지 아니면 후대에 판본을 각할 때 각자장(刻字匠)의 오각(誤刻)인지를 가릴 수가 없으나, 제대로 하자면 수가 아니라 재위했던 기간이 158년이라야 했다. 임금의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천관우 선생은 “수로왕이 158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나 이 기간은 수로왕으로 상징되는 구사국(狗邪國)의 창업기라”고 그의 『복원가야사(復元伽倻史)』에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수로왕의 태어나는 이야기도 상식 밖의 일이다. 즉 신라 유리왕 19년, 서기 42년에 하늘로부터 여섯 개의 알이 든 눈부시는 금합이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졌는데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수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키가 9척이며 가장 먼저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이름이 ‘수로(首露)’가 되었고, 자라서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를 왕후로 맞게 된 사연은 앞에서 자세히 적었다. 가락국은 수로왕이 나라를 세운 다음 신라 법흥왕 19년, 서기 532년에 멸망할 때까지 491년 동안이나 은성을 누리며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도 백제나 신라의 그늘에 묻혀서 가락국의 역사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나 『삼국사기』의 몇 줄 안 되는 연대기에서 조각나버린 흔적들을 간신히 주워볼 수 있을 뿐이다. 부산에 방문했을 때 현대적인 관광지보다는 문화유산을 찾아 탐방하기 위해 수로왕릉을 선정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김해를 여행할 때에는 걸어서 김해의 볼거리들을 이곳저곳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김해 여행을 계획하면서 수로왕릉을 첫 방문지로 생각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