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발표문
- 최초 등록일
- 2016.12.21
- 최종 저작일
- 2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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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한 발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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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김부식과 삼국사기
1. 김부식의 생애
2. 삼국사기의 구성
3. 삼국사기에 대한 견해
Ⅲ. 일연과 삼국유사
1. 일연의 생애
2. 삼국유사의 찬자와 찬술시기
3. 삼국유사의 구성
4. 삼국유사의 사료적 의의와 한계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의 자(子)는 입지(立之)이며, 호는 뇌천(雷川)이다. 신라 왕실의 후예로 경주(慶州)의 주장인 김위영의 증손자이다. 이전까지 경주 일대에 세거하던 그의 집안은, 부친 김근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관료로 진출하게 된다. 김근은 장년의 나이에 죽음으로써 고위 관직에까지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의 집안이 신라 왕실의 후예이기는 했지만, 고려 왕조에서는 현실적으로 귀족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부식과 그의 형제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학문을 통해 출세해야만 했다. 김부식은 숙종 원년(1096) 만 21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관료로 진출하였다. 허나 과거급제 후 바로 관직에 진출하지는 못하고 몇 년 동안 서임을 기다리다 정7품직인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의 기록관인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에 초임되었고, 그 임기를 마칠 무렵에는 한림원의 직한림(直翰林)에 발탁되었다. 이후 그는 때때로 다른 직에 드나들기도 하였지만, 20여년 간 한림원에 근무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특히 예종대의 학문 우대 정책으로 보문각, 청연각이 설치되었는데, 그의 학문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그의 학문연구는 『삼국사기』 서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한림원에서 김황원, 이궤 등과 교유하면서 고문(古文)을 익혔고, 경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경전의 뜻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려는 현실 개혁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의 편찬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는 특히 김부식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실이 주목된다. 그는 예종 11년(1116) 송나라로 가는 사신단에 문한관으로 다녀오게 된다. 6개월간 송에 머무는 동안 김부식은 발달된 송의 문물을 상세히 볼 수 있었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처음으로 구해와 이를 통독하였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후일 『삼국사기』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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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相鉉, 「三國遺事論」, 2003
정구복, 「김부식의 생애와 업적」,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