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기의 생애와 광종의 개혁정책
- 최초 등록일
- 2016.12.12
- 최종 저작일
-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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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쌍기의 등용과정
2. 노비안검법
3. 고려 과거제도의 주요내용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쌍기의 등용과정
쌍기는 후주에서 귀화한 사람으로 후주의 태조 치하에서 절도순관, 장사랑, 시대리평사 등을 지냈다. 시대리평사는 시험을 주관하는 관리이기 때문에 쌍기는 과거제도에 관한 지식이 많은 인물이었다. 특히 당시 후주는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고려가 처해 있는 입장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후주의 태조는 제후국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당나라 제도를 모범으로 과거제를 비롯한 일련의 개혁정책을 실시했고, 그 결과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쌍기는 그 개혁과정에서 과거에 관한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광종은 후주의 개혁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도 후주를 모범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려에는 개혁을 추진할 인물이 없었다. 그러던 중 후주의 2대 왕 세종이 즉위하면서 고려에 사신을 보내왔다. 고려가 951년부터 후주 연호를 사용하자 후주측은 1차로 광종을 고려 국왕에 봉하는 책봉사를 보내왔고, 다시 2차로 검교태사로 봉하여 고려 백관들의 복식을 중국식으로 바꾸기 위해 책봉사를 보내왔다.
당시 책봉사는 장작감 설문우였고, 쌍기는 그를 다라 함께 왔다. 쌍기가 설문우를 따라온 경위는 분명하지 않으나 광종 쪽에서 초청한 것으로 보인다. 955년에 대상 왕륭이 주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마 이때 광종은 주나라의 인재를 초빙하라는 밀명을 내린 듯하다. 왕륭 역시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광종의 이러한 요구에 쉽게 순응했을 것이다.
고려에 당도한 쌍기는 얼마 후 병에 걸려 사신 일행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어쩌면 이것은 미리 계획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와병을 핑계하여 환국하지 않고 있다가 사신 일행이 돌아간 다음에 광종과 대면한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책봉사 일행이 돌아간 뒤 쌍기는 병상에서 일어났고 드디어 광종과 대면하게 된다. 쌍기를 만난 광종은 그의 개혁적인 성향과 뛰어난 식견에 감탄하여 후주의 세종에게 국서를 보내 쌍기를 고려의 신하로 삼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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