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후 양국의 이해득실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6.11.03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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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임진왜란 발발배경
1. 임란 전 조선의 정세
2. 임란 전 일본의 정세
3. 조선통신사
III. 임진왜란 전개과정
IV. 임진왜란 전후 상황
1. 조선의 전후(戰後) 상황
2. 명의 전후(戰後) 상황
V. 결론
본문내용
I.서론
선조(1567∼1608) 25년(1592-임진년), 수백척의 왜선이 부산진첨사 정발(鄭撥, 1553~1592)이 지키고 있는 부산포(釜山浦)에 나타남으로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왜군은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사용하여 순식간에 부산포, 동래성(東萊城) 등을 함락시키고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상륙한 지 약 20일 만에 한양을 함락시키고, 60여 일 만에 개성, 평양 등이 함락하여 선조를 의주로 도망하게 한다.
다행히도 그 후에 명나라의 원군과 수군의 활약, 의병의 분전 등으로 간신히 왜군을 몰아내긴 하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이 조선에 미친 피해는 막대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이 전쟁을 계기로 새로운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일례로, 왜란 전에는 조선에서 일반 서민들이 쓰던 질그릇을 일본에 가져다 팔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였었는데, 왜란 후에는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를 구워냄으로서, 그리고 일본의 여러 다이묘(大名) 일본에서 헤이안 시대에 등장하여 19세기 말까지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고 권력을 행사했던 유력자
들이 그 활동을 지원함으로서 도공 등 공업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던 조선에 비해 일본에서의 그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전쟁 이후의 도자기 산업에서는 오히려 일본이 조선을 앞지르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중 략>
II.임진왜란 발발 배경
1. 조선의 정세
1392년, (이성계李成桂, 1335 ~ 1408) 조선을 건국한 이후, 처음 백년 동안은 정치체제와 관료체제가 잘 정비되어 국력이 신장되어 갔다. 이때 당시의 조선은 경지 면적도 160만 결 조세를 계산하기 위한 농지 면적의 단위.
을 넘었으며, 인구도 5-6백만명에 육박하는 등 잘 통치되었다. 이렇게 잘 통치되던 조선왕조는 연산군(燕山君,1495~1506) 대에 들어와서 미증유의 폭정이 시작되었고, 유교경전에만 충실하려는 사림 또는 유림이라 불리던 정치인과 관료들은 민생문제나 나라의 운명에 관한 중요한 일이 아니라 자그마한 명분싸움에서 비롯된 분파나 붕당으로 나뉘어 정권쟁탈을 위한 권력싸움만 일삼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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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명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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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웅진닷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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