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 로마 제정기의 황제 숭배 - 아우구스투스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6.07.31
- 최종 저작일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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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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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황제숭배의 성립과 견해
1) 황제숭배의 성립
2) 황제숭배의 견해
Ⅲ. 동방속주의 황제숭배
Ⅳ. 서방속주의 황제숭배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로마는 공화정 말기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B.C 81년, 세르토리우스가 히스파니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B.C 78년에는 집정관 마르쿠스 레피두스는 반란군을 일으켜 로마로 진격하였고 원로원에 개혁을 요구하였다. 그 외에도 농민, 퇴역병을 비롯한 사회 하층민과 노예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삼두정치가 행해지고 원로원은 권한을 상실하였다. 삼두정치의 일원 중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를 장악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의 권력이 비대해지자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를 암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 속에 옥타비아누스가 최종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는 권력을 장악한 후에 비상대권을 원로원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었고, B.C 27년에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원로원으로부터 받았다. 이때부터 로마는 제정(帝政)이라는 이전과 전혀 다른 체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로마를 안정화 시키고 첫 황제로 등극하였던 아우구스투스는 권력의 안정을 위해 ‘황제숭배’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황제숭배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 적용되는 범위 및 방식이 차이를 보였다. 본고에서는 황제숭배의 기틀을 만든 아우구스투스를 중심으로 황제숭배의 성립과정, 동방속주와 서방속주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달랐던 황제숭배 모습을 살펴보았다.
Ⅱ. 황제숭배의 성립과 견해
1) 황제숭배의 성립
아우구스투스는 100여년에 거쳐 일어났던 내란을 종식시키고 프린키파투스라는 체제를 확립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내란으로 인하여 로마시민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고 평화와 안정을 원하였다. 이러한 시민들의 소망은 중앙으로부터 강력한 권력행사를 승인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이 아우구스투스가 실권을 잡고 황제에 등극하여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데 당시 시대적 배경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권위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형식으로 남아있었다. 불안정한 권력을 아우구스투스는 황제숭배라는 제도를 통해 조금 더 객관성을 보완하였다. 로마의 관습과 종교적 전통을 복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고양하고자 하였으며 종교적 지도자로 부각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참고 자료
조현미, 「아우구스투스 시기의 황제숭배 양상에 관한 검토 - 지배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중심으로」 「西洋古代史硏究」12,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3
김상엽, 「황제숭배와 아우구스투스의 지위 - 동방속주와 서방속주에서의 차이를 중심으로」 「西洋古代史硏究」19,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6
이지은, 「로마제정 초기의 황제숭배」 「西洋古代史硏究」25,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9
최혜영, 「로마 황제 숭배와 유대-크리스트교와의 갈등」 「西洋古代史硏究」25,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