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넝마공동체의 성격과 그 변화

등록일 2003.07.11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머리말
2.80년대 중반 넝마주이의 실태
3.넝마공동체의 설립과정
(1)구성원
(2)정체성
4.시설
(1)작업장
(2)도구와일터
5.작업과정
(1)재활용품수집과정
(2)아파트벌이와 또박벌이
(3)작업일
(4)작업량
(5)작업과정의 변화
6.공동체의 운영과 성원들의 생활
(1)운영
(2)생활
(3)외부와의 관계
7.맺음말

본문내용

2. 80년대 중반 넝마주이의 실태
넝마공통체가 운영되기 시작하던 1986년 당시 서울에만도 재건대에서, 사설막에서 고물을 주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약 3천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여기에 일반고물상, 경우회나 재건대의 폐품수집소, 난지도 처분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합하면 서울시내에만도 1만여명 정도는 됐다. 1987년 여름‘자활근로대 설문조사’를 보면 당시 실태에 대해 잘 알 수 있는데, 철새와 같은 이동으로 가호적이거나 무호적인 사람도 일부 있었으며 정상가정(동거포함)은 46%, 나머지는 독신이었다. 그리고 군대 면제와 미필이 76%인데 이는 아마도 교도소생활이나 잦은 주거지 이동에 따른 기피 때문인 것 같다. 평균학력은 매우 낮았으며 반이상이 전과가 있었고 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를 경험한 사람이 절반, 또 반이상이 고아원생활을 했었다고 응답했다. 당시 도시가구 월평균소득이 40여 만원이었으나 넝마주이들은 대다수가 월20만원이하를 벌었다. 작업도구로는 리어카를 사용했으며 다른 빈민계층과 다른 차이점이라면 오직 벌이에 필요한 망태기와 집게정도만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웃주민들과는 대체로 상호 협조적이었지만 넝마주이생활이라는 최고의 밑바닥생활을 오래한 그들일수록 사회의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비판적이었다.
넝마주이들 가운데서도 가진 것이 전혀 없고 국가의 보호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설막에서 대원으로 일하였다. 사설막에서는 막을 설립한 조마리가 대원들의 수집품을 재생공장이나 가공공장으로 보냈다. 이때 조마리는 공동생활을 돕는 대신 다른 고물상보다 낮은 비용을 책정하며 수집량에 비례해서 일정기간마다 돈을 주었다. 물론 조마리는 직접 일하기도 하지만 놀면서 대원들이 벌어온 것을 먹고살기도 한다. 이런 직접 수탈체제는 넝마주이들이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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