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군비경쟁과2차대전

등록일 2003.07.09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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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한 후 국제체제는 이른바 베르사유체제라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 베르사유체제하의 국제정세는 미약한 세력으로나마 잔존하였던 봉건적 절대왕조(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로이센제국, 러시아 로마노프왕조 등)가 붕괴하였으며 주요 전장이 된 기존 유럽의 열강들은 자체 국력을 많이 소진한 사이 신흥세력으로써 성장한 미국이 (고립주의를 탈피하고) 제국주의 욕구를 표출하여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양상을 띠었다.
전쟁의 참혹성에 대한 반성으로 평화와 질서의 회복이 열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강 각 국은 전쟁직후부터 해군력 확장을 위해 경쟁을 벌인다. 물론 이 당시 해군력 확장 경쟁에 뛰어 들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진 열강은 영국과 미국, 일본뿐이었다.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여력이 없었으며 프랑스 역시 1차 대전 중 국력을 많이 소모해 버렸다. 영국 역시 무리가 되었지만 아직 넓은 식민지가 건재했으므로 종전 직후부터 이미 42척의 주력함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해군력 보유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해군 주력 전투력을 강화시킬 목적으로 대형 순양전함 Hood(42100ton)를 건조하는 등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한다. 영국의 함대 재편성을 주시한 미국 역시 군비 경쟁에 뛰어들어 1925년까지 전함 32척 순양전함 16척 중순양함 48척으로 구성되는 함대를 건설하려 했다. 일본은 전함 8척 순양대함 8척을 골자로 하는 ‘8․8함대안’으로 해군 세력을 확장한다.
그렇다면 왜 각 국의 군비 경쟁은 해군력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고찰해 본다. 우선 평화시 군비 확장이라는 측면을 염두 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평화시 군비 확장은 일종의 전략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에 있어 전략무기의 개념과 같은 것이다. 이는 당시 해군력의 확장이 핵무기,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원자력 잠수함 등과 같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력을 과시하는 척도가 되며 유사시에는 군사적 위협 수단으로의 효용 가치도 있다는 것이다. 1차 대전이 끝난 당시, 육상전력은 겨우 초기적인 탱크가 등장한 단계였으며 독가스는 국제적․인권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혁신적인 대구경 총포가 개발되었어도 상대국을 단번에 제압하기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제 막 채플린 비행선이 전쟁에 사용되고 정찰기 정도만 띄우는 수준의 공중전력은 아예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군력 증강의 경우에는 (당시 수준에서는) 상대국에게 규모의 측면(한 척의 거함 거포가 보여주는 위용은 그것이 가진 전투력 이상이다.), 화력의 측면에서 충분히 appeal 할 수 있었다. 이때 상대국에 대한 appeal은 더욱 크고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효과가 컸기 때문에 주로 대규모 전함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는 나중에 논의되는 군비 축소도 대규모 전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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