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도

등록일 2003.07.08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봉건제도의 개념
2. 봉건제 개념의 형성사
3. 봉건사회의 구조
4. 봉건제도의 발전과정
1)동양
2)서양

본문내용

봉건제 개념은 일반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앙시앵 레짐(구제도) 하의 상황에서 생긴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봉건제(feodalite)’라는 용어 자체는 봉(封)을 뜻하는 라틴어 fevum, feodum의 형용사형인 feodalis에서 유래한다. 이 말이 프랑스어 속에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초기에 이르러서인데, 처음에는 어원에 충실하게 봉의 법적 자격이나 봉에 부수되는 고유의 부담(負擔)을 뜻하는 법률용어에 지나지 않았다. 봉건제라는 말이 ‘하나의 문명 상태’를 나타낸 역사용어로서 최초로 사용된 것은 불랭빌리에 백작의 《프랑스 구정체의 역사》(1727)에서이다. 그는 샤를 루아소 등의 절대주의 이론가에 대항하여 귀족의 봉건적 제권리를 옹호하려는 의도에서, 주권(主權)의 세분화야말로 게르만인의 침입 후 출현한 봉건정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었다고 논하였다. 불랭빌리에의 저서의 영향을 받은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48)에서 프랑크왕권의 성립과 그 해체의 과정 속에서 확립된 봉건법은 역사적 산물로서, ‘세계에서 한 번 이상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고 주장하고, 또 봉건정체에서는 주권이 대소 무수의 봉(封), 즉 영주지배권으로 분할되어 있어서 아나르시(anarchie:무정부상태)에의 경향을 가진 ‘봉(封)의 법(法)’이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볼테르는 정복 위에 구축된 봉건제는 특수한 유럽적인 역사현상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도, 《여러 국민의 습속·정신론》(56)에서 그 역시, 카롤링거 왕조 붕괴에 이은 10, 11세기에 프랑스나 독일 및 이탈리아에서는 정치권력이 성채를 거점으로 한 ‘무수한 소폭군(小暴君)’에 의해 분할 소유되어, 원수(元首)도 경찰도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 아나르시가 지배하는 ‘완전한 봉건정체’가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립적 영주지배권을 구축하고 있었던 중세의 묵은 지배구조가 이미 소멸되어 단순한 역사적 추억으로 되어 있던 절대왕정시대에, 절대주의의 이상인 통일적·주권적 국가의 반전상(反轉像)으로서 주권의 세분화를 표지(標識)로 하는 봉건제의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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