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수원성
- 최초 등록일
- 2003.07.03
- 최종 저작일
-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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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화성은 사적 제3호로서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재위시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되었으며, 축성시 48개 시설물이 있었으나 시가지 조성, 전란 등으로 인하여 일부 소멸되고 41개 시설물만이 현존하고 있다. 또한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되어 1997년 12월 유네스코 총회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머리말
지금으로부터 600년쯤 전인 1394년(태조3년), 노쇠한 고려(高麗)왕조를 뒤엎고 새로이 조선(朝鮮)왕조를 개창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새 왕조의 도읍으로 한양(漢陽)을 선정하여 이도(移都)하고 도성(都城)과 왕궁을 마련하는 대역사(大役事)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꼭 400년 후인 1794년(정조 18년), 갖은 파란 끝에 왕위에 올라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正祖)는 한양 남쪽 100리에 있는 수원에 화성(華城:`수원성'은 일제 시대 이후 붙여진 별명이며 원래의 정식 명칭은 `화성'이다.)이라는 성곽을 축조하여 그에 둘러싸인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역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정조(正祖)시대에 건설된 화성(華城) 즉, 수원성은 우리 민족 문화의 위대한 성과물 중 하나이다. 전장 6km에 달하는 성곽과 많은 부속건물, 도시기반시설과 생산기반시설들의 총화로 이루어진 자족적 계획도시 수원의 건설은 조선 역사상 서울 건설 이후 가장 대규모의 도시 건설 사업이었다.
수원성은 전체 길이 약 5.4킬로미터의 돌로 쌓은 성벽과 이 성벽에 부수된 여러 가지 형태의 방어시설, 4개의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성벽으로 둘러 쌓인 중앙에 행궁이 자리 잡고 있다. 수원성이 위치한 지세는 서쪽에 팔달산이 있고 그 반대쪽인 동편에도 나지막한 구릉이 있으며, 이 동서 경사지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개천이 흐르고 그 주위에 약간의 평지가 펼쳐진 곳이다. 이 동서의 구릉 사이 평지에 수원부의 시가지가 전개되고 있으며 시가지를 둘러싸면서 성벽이 팔달산의 정상으로부터 반대쪽 구릉의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성벽의 대부분은 경사지의 지형에 따라 불규칙하게 굽어지고 성벽의 높이도 일정하지 않다. 이러한 수원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바로 우리나라 성곽이 갖는 독특한 점이다.
수원성의 축성은 흔히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비명에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의 발로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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