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록감상

등록일 2003.06.27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신미록>은 1861년 서울에서 간행된 한글 방각본으로 1811-1812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중심소재로 하고 있다.
청나라 가경(嘉慶) 16년(1811)에 평안북도 용강의 홍경래는 가산의 이희저와 곽산의 우군측과 더불어 가산 다복동에서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다니는 무리들을 모아 난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다. 이들이 살기 어려운 백성들을 선동하니 가산과 박천에서 수백명이 모였다. 우군측과 김창시는 모사가 되고 홍경래는 대원수, 김사룡은 부원수, 홍총각은 좌선봉, 이제차는 후군장이 된다.
신미년 12월에 김사룡 · 이제차는 곽산 · 박천 · 철산 · 선천을 치고, 홍경래와 다른 장수들은 가산을 친다. 가산군수가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자 군수부자를 죽인 후 가산을 점령하고, 이어 곽산군수의 인부를 빼앗고, 격문을 내어 많은 민중의 호응을 얻고 질풍과 같이 청천강 이북의 박천 · 정주 · 선천 · 태천 · 철산 · 용천 등의 8읍을 점령해 버렸다.
안주를 공략하려 했던 홍경래의 반란군은 송림에서 처음으로 관군을 맞아 패배하고 정주성으로 피신하는데 처음에 200여명을 끌고 들어갔으나 차차 백성들이 따라와 4,000 ∼ 5,000명이 되었다. 이때 김견신과 허황이 의병을 일으켜 서림 · 철산 · 송림 · 동림을 수복하였다. 관군이 정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를 하고 곽산 · 용천 · 선천 등은 수복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관군은 정주성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반란군이 완강하게 저항하는데다 날씨도 열인 좋지 않아서 실패를 거듭하였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