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의 불교와 석굴 자료(남북조 시대의 상황(서기 420-589년), 남북조 시대의 불교의 전파와 불교미술, 남북조 교단의 차이, 남북조 불교가 후대에 끼친 영향, 남조의 석굴 - 장수성 난징 시샤산(栖霞山) 첸포암(千佛岩), 북조의 석굴 – 윈강(雲岡)석굴 )
- 최초 등록일
- 2016.06.19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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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국의 불교
2. 남북조 시대의 상황(서기 420-589년)
3. 남조의 불교
4. 북조의 불교
5. 남북조 시대의 불교의 전파와 불교미술
6. 남북조 교단의 차이
7. 남북조 불교가 후대에 끼친 영향
8. 북조의 석굴
본문내용
양 무제(464-549)는 천감(天監) 원년(502) 4월 8일 황제에 즉위하였으며 549년까지 거의 반세기동안 양나라를 통치했다.
현존하는 자료로는 양 무제가 불교에 귀의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즉위한 지 3년 만에 양무제는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선포한다.
중국 역사상 그의 통치는 유례없이 불교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황제보살, 보살천자로까지 존칭되었으며, 일상생활은 거의 출가자와 같은 엄격한 계율주의로 일관하였다. 무제는 동태사를 비롯하여 많은 절을 지었으며 이들 절에 가서 자주 법회를 열었다.
양무제는 무엇보다도 불교가 유·도 양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양무제는 유교는 윤리도덕을 지키게 하며, 도교는 지나치게 득실을 따지지 않게 하고, 불교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고 있으며, 그 근원은 모두 같다는 ‘삼교동원(三敎同原)’설을 제창하였고, 공자 노자 석가를 삼성(三聖)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양무제의 입장은 후대에 ‘삼교일치’의 원형으로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세속적 권력의 유지를 위한 통치술의 일환으로 불교를 이용하였다는 비판을 받게 하는 빌미를 주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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