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6.05.04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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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시습의 생애
2. 매월당집의 주요내용
3. 김시습의 사상적 배경
4. 김시습의 삶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김시습은 세종 17년(1432)에 한성에서 태어났다.
야사에서는 김시습이 태어나기 전날 밤 근처에 있던 성균관 유생들이 그의 집에서 공자가 태어나는 꿈을 꾸었는데 정말로 다음 날 김시습이 태어나자 장차 귀한 인물이 될 징조라고 믿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은 이웃에 살던 경호 최치운이 논어에 나오는 말을 따서 ‘배우면 곧 익힌다’는 뜻으로 시습(時習)이라고 짓기를 권하여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는 태어난 지 여덟 달 만에 글자를 알았고 3살 때에는 이미 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소학》 등도 읽어 그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 말 그대로 천재였다.
5살 때 홍문관 수찬으로 있었던 이계전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에 전념하면서 그의 천재성이 장안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허조라는 정승이 어린 김시습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그의 집을 찾았다.
허조는 과연 신동이라고 감탄하며 돌아갔고 이 소문은 급기야 대궐에까지 전해진다. 당시 임금이었던 세종은 박이창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박이창은 대궐로 불려온 어린 김시습의 능력을 여러 방면으로 시험해 봤으나 어린 나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김시습이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대답하자 항간의 소문이 틀림없음을 왕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세종은 김시습의 재주를 가상히 여겨 비단 50필을 상으로 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면서 김시습이 그 많은 비단을 어떻게 가져가는지 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분부했다.
이에 어린 시습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각 필의 끝을 묶은 다음 그 한쪽 끝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나갔다고 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신동이 났다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계전 문하에서 학문의 기초를 읽힌 김시습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김반과 별동 윤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 밑에서 학업에만 열중하던 그에게 불행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15살 때 어머니 장씨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지내게 되었으나 3년이 못 되어 외할머니마저 별세하고 말았다.
참고 자료
김시습 지음, 이승수 역, 《김시습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김정우 지음, 《인물로 보는 조선사》, 글로북스, 2012.
김시습 저,《금오신화》, 푸른생각, 2014.
김철호 외 엮음, 《세계의 사상 100선》, 녹두,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