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답사를다녀와서답사보고서-역사
- 최초 등록일
- 2016.04.27
- 최종 저작일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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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 論
Ⅱ. 本 論
1. 2011년 4월 27일 첫째날
2. 2011년 4월 28일 둘째날
3. 2011년 4월 29일 셋째날
Ⅲ. 結 論
본문내용
현장학습 첫째날 가낭 인상깊었던 장소는 5.18국립묘지와 소쇄원이였다. 먼저 5.18국립묘지부터 설명해 보겠다. 5.18국립묘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되신 분들과 부상 및 구속되신 분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다. 1994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묘지 성역화사업 후에 망월동묘지(5.18구묘지) 및 전국 각지에 묻혀 계신 분들을 여기에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아주광역시에서 조성,운영하여 온 5.18묘지가 2002년 7월 27일 국립묘지로 승격됨에 따라 국가보훈처에서 관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의 거룩한 정신이 여기 우뚝선 탑 위에 장엄한 불꽃으로 솟아 우리 민족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널리 번져나갈 것이다.
<중 략>
소쇄원을 조성한 사람은 양산보로써 어릴 때 조광조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고 한다. 양산보는 현량과에 응시하여 합격하기도 했으나,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스승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당하게 되자 귀향가는 스승을 모시고 낙향하게 된다. 그 후 조고아조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았고 양산보는 세족적인 출세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에 숨어 살기를 결심하였다. 양산보가 담양의 창암촌에 동아온 시기는 열여덟살 때(1920)인데 창암촌으로 돌아온 즉시 소쇄우너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 략>
상대포를 둘러 나오면 전시관 앞에 위치한 천인천자문이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이 천인천자문인데 이는 5세기초 천자문을 비롯한 백제의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하여 고대 아스카문활르 꽃 피워 한.일 문화교류사를 빛냈던 영암 출신 왕인 박사의 인류 공동번영의 업적을 기리고, 박사께서 남겨주신 ‘소통과 상생’의 정신을 널리 세계평화의 디딤돌로 삼기위해 한국, 중국, 일본의 명사 1,000명의 육필로 천자문 한 자씩을 지극정성으로 쓰고, 이를 다시 영암의 석공이 돌에 새겨 만든 왕인 상징 「천인천자문」조형물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