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주요 정치 업적 및 평가
- 최초 등록일
- 2016.04.06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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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광해군은 조선의 제 15대 왕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과 함께 실록이 아닌 일기로 기록된 2명 중 한 명이며, 최다 존호를 보유 한 왕이기도 하다. 양위와 폐위로 인해, 묘호가 추숭되지 않았던 두 임금 중 하나다. 역대 임금 중, 가장 평가가 극명한 인물로 꼽을 수 있다.
광해군은 1575년에 선조와 후궁 공빈 김 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장남인 임해군이 있었으나, 그는 장남인 것과는 별개로 성격이 포악하여 일찍이 왕위 경쟁에서 밀려났다.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는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광해군은 직접 군사를 독려하고 지휘하며 왜군에 맞섰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인목황후와 혼인을 하고, 인목황후는 영창대군을 낳는다. 선조는 당시 자신이 방계인 것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콤플렉스를 떨치기 위해 영창대군을 세자로 만들고 싶어 했고, 유영경을 위시한 영창대군 옹립 파들이 적통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왕권 다툼으로 인한 피바람이 불 뻔했으나, 당시 왕위계승에서 광해군이 조금 불리했다는 부분에서 ‘선조 독살설’이 의심됨.
참고 자료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