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울릉도를 둘러싼 러・일의 각축과 조선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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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6.04.02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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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ㆍ수록지정보 : 독도연구 / 10권
ㆍ저자명 : 김호동
목차
1. 머리말
2. 칙령 41호 반포 이전의 울릉도・독도를 둘러싼 러・일의 각축
3. 러일전쟁 전후 일본의 독도 침탈
4. 맺음말
한국어 초록
흔히들 일본의 독도점취는 러일전쟁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과 러시아의 경우 그 이전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야욕을 갖고 있었음을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문제의식 하에서 본고의 경우 일본 의 독도 점취는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조치였다 는 시각에서 벗어나 1850년대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개척한 뒤 남 하의 향방을 동아시아로 정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러시아 와 일본의 각축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부동항의 확보에 관심을 가진 러시아는 1854년 조선 동해안을 샅샅이 탐사하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러시아 해군이 1857년에 ‘朝鮮東海岸圖’를 처음 발행하였다. 여기에 울릉도와 독도가 한 국영토로 파악되었고, 이 지도는 1862년, 1868년, 1882년에 증보 간행되었다. 일본 해군은 1868년 러시아의‘조선동해안도’를 입 수하였고, 태정관과 외무성 은 일본 관리를 파 해 조선의 사정을 내탐하였다. 이때의 문서인‘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에는 러시아 의 조선 경략론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부속으로 된 시말 을 조사하라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러시아가 울릉도와 독도 를 부동항으로 주목하게 될 상황을 염려하여 조사항목에 포함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의 교역이 증대하자 일본은 조선을 개국시키면서 원산을 개항장에 포함시켰다. 그에 따라 울 릉도와 독도에 관심이 고조되어 개척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불법적으로 울릉도에 들어와 벌목과 어로활동을 하였다. 러시아는 고종의 아관파천 때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획득한 뒤(1896.8.28.), 1899년 일본의 울릉도에 대한 삼림채벌 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러시아 군함이 몇 차례 울릉도에 기항하여 병력을 주둔시키기도 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독도를 관할하게 하는 칙령 제41호를 발표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 태를 경험한 일본은 러일전쟁의 전략상 목적에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1905년의 무주지 선점론 역시 그 과정에서 다듬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