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조선의 관계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04.01
- 최종 저작일
-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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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를 배우는 목적중 하나는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한 예를 들어보겠다. 2007년 늦겨울 백모씨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의 앞·뒷면에 붉은색 페인트로 ‘철거·병자·370’이라 쓰는 등 비석과 안내판을 훼손하였다. 그는 경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나라를 잘못 이끌면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점을 경고하고자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370이라는 숫자는 “1637년 조선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은 지 370년이 지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과연 우리나라는 현재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현재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에서 가장 근접해있는 조선과 청의 대외관계 속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조선과 청과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조공책봉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조공책봉의 정의, 고대에서부터 명나라까지 대외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또한 양대 호란을 전후한 후금과 조선과의 외교적 갈등을 토대로 조공책봉관계와 개항 전후 서구 근대적 외교 질서에 따른 조공책봉관계의 동요, 서구 열강, 특히 일본세력의 유입으로 인해 조공책봉관계가 변질되어가는 구체과정을 살펴보겠다.
조공책봉체제란 페어뱅크(John J. Fairbank)와 등사우(S. Y. Teng)가 청대의 조공체제를 분석한 이래로 조공체제는 중국 중심의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가장 보편적인 모델로 인식되었다. 조공체제는 세계를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하는 고대 중국인들의 문화적 우월주의에 기반을 두고 발전하기 시작하여, 명대와 청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측면에서 중국과 그 주변국들의 관계를 규율하는 수단으로 제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점으로 볼 때. 조공체제는 중국이 1842년 영국과 남경조약을 체결하여 조약체계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가관계를 규율했던 유일한 국제질서였으며 유럽의 국제질서와 다른 중국적 세계질서는 중화주의에 기초한 위계적 국제질서라고 평가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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