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1. 상 왕조의 건립
Ⅱ. 본론
1. 상의 정치
2. 상의 경제
3. 상의 사회
4. 상의 문화
5. 상의 멸망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1. 상 왕조의 건립
1) 상의 기원
고고학상의 상(商)의 기원으로 대표적인 것은 이리강문화(二里崗文化)이다. 이리강문화는 대문구 문화와 산동 용산문화(빈부의 분화와 분업, 남녀 합장으로 추측할 때 일부일처제 사회)가 결합된 동해안 선사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상족의 발상지는 황하 하류 발해만 해안 지대이고, 역사가 유구한 부족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모계 씨족사회 기간에 간적이라는 여인이 해안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현조가 낳은 알을 삼킨 후에 상의 시조인 설을 낳았다고 한다. 이것은 발해만의 여러 부족에 존재하던 鳥 토템을 반영한 것이다.
설부터 존재하던 상족은 부계 씨족사회로 진입하였으며 설의 공적이 뛰어나자 그의 부족은 세력이 신속하게 발전하였다. 설은 하의 우왕(禹王과) 동일시기에 순(舜)의 조정에서 근무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설은 자라서 우를 도와 치수에 공을 세워서 상에 봉해졌고 자성(子姓)을 하사 받았다. 상은 탕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하에 복속되었다.
그들이 빈번히 이동한 원인은 아마도 수초를 따라서 방목 생활을 하였던 것 같으며 이동 과정 중에 세력과 활동 범위가 확대되어 상족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2) 상의 건립
상족은 매우 오래된 부락으로서 적어도 하족과 비슷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상 시대에 있어서 족의 의미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족은 읍에 거주하는 하나의 혈연집단이며 제사의식의 관계에서는 종으로 구분되고 정치적인 신분에서는 씨로 표시되는 것이지만 족의 원래 의미는 군사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생각해 볼 때 군사조직은 본래 혈연이 중심이 되는 단위였을 것임을 알게 된다. 상의 건국 이전의 활동 지역은 황하중 하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상은 하를 멸망시키는 과정 중에 서쪽으로는 융족(戎族)과 강족(羌族)의 거주 지역에까지 이르렀고 남으로는 안휘성(安徽省)의 하산(合山), 강서성(江西省) 청강(淸江)의 오성(吳城) 등의 지역과 하북성(湖北省)의 강한(江漢) 평원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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