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리포트] 조선시대사화, 실학자들의 개혁
- 최초 등록일
- 2015.11.26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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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조선시대 4대 사화
2.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사회개혁안
본문내용
훈구파가 등장한 것은 세조(수양대군) 때 부터였다.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었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단종에게는 작은아버지였다. 단종이 열 두 살인지라, 김종서 등 그때 왕이 된 것을 도와준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고 많은 토지와 노비를 선물로 주었는데 이런 훈구파를 비판하면서 일어난 새로운 세력이 왕이나 관리들의 잘잘못을 비판하고 충고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림파'였다.
사림이란 전원의 산림(山林)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문인·학자로서 15세기 이후 조선 중기 중앙 정계를 주도한 정치집단이다. 고려 말기의 유학자 길재(吉再)가 은퇴하여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쓴 결과 영남 일대는 그의 제자가 많이 배출되어 조선 유학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들 세력은 훈구파에 대립하여 사림파(士林派)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조선 건국 시기에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주로 향촌사회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네 차례의 사화를 거치며 훈구파의 탄압을 받다가 선조 대에 이르러서는 훈구파를 정치의 전면에서 몰아내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조선 중기 붕당정치의 단초가 되었다. 뚜렷한 학통은 없으나 처음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제자들의 등용을 도운 김종직의 , 길재의 학통이 김종직에게 이어진 것으로 보아 사림을 길재의 학통으로 보기도 한다.
사화(士禍)는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화를 입는 일을 가리키며, 한국사에서는 특히 조선 중기에 사림 세력이 화를 당한 연산군 때부터 명종 즉위년까지 발생한 4차례의 옥사를 말한다. 이들 사화는 1498년(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년)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년)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4대 사화’라고 부른다.
성종 때부터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사림 세력은 훈구 세력의 비리를 규탄하면서 점차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갔다. 그러던 중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훈구 세력의 불만이 폭발하였고, 양 세력 간의 갈등으로 사화가 발생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