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 종묘에 대한 A+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5.11.04
- 최종 저작일
-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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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종묘란
2. 종묘의 구성
4. 일무
5. 악장
6. 의복
7. 악기
8. 중국의 종묘제례
9. 종묘사직
참고문헌
본문내용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의 역대 제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사당으로, 종묘는 사직단과 함께 조상에 대한 예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1394년10월 태조가 서울로 수도를 옮긴 그 해 12월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다시 지어졌다.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 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상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의 남쪽에 인접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로가 나면서 끊기고, 현재는 육교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다.
<중 략>
전사청은 종묘제례에 올릴 제사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제사에 관한 일을 처리하던 전사관이 사용하던 방도 있었으며 제물로 바치는 짐승을 도살하던 공간도 따로 있었다. 건물은 'ㅁ'자형으로 배치되었고, 주실은 정면 7칸·측면 2칸 규모이며 좌우 행각에는 온돌방과 마루방을 들였다. 마당에는 제수를 장만할 때 사용하던 돌절구 같은 큼직한 돌이 4개 있다. (밑에 사진에 앞에 돌절구 4개)
전사청 앞에는 '찬막단'과 '희생대',라는 판이 각각 놓여 있다. '찬막단'은 제례 때 쓰일 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단이다. '희생대'는 생성대라고도 부른다. 제례 때 바칠 소, 양, 돼지를 검사하는 곳이다.
<중 략>
5례가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성립되었듯이 종묘 제도 역시 그 근간은 주례에서 비롯된다. 다만 선왕에 대한 제사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실제의 종묘 제도는 어느 왕조에서나 통일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또는 왕조의 사정에 따라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중국의 오래 된 종묘 제도는 대체로 예기의 기록을 전거로 하고 있으나 후한대에 들어와 예기에 적힌 것과 상반되는 변형 된 제도가 채택되면서 내용상의 혼란이 초래되었다.
우선 예기에서 명시하고 있는 종묘 제도를 보면 “천자는 7묘로 3소 3목에 태조의 묘를 더하여 7이 되며 제후의 5묘로 2소 2목에 태조의 묘를 더하여 5가 된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문화재청 종묘 http://jm.cha.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종묘대제 http://www.jongmyo.net/
문화콘텐츠닷컴 http://jongmyojeryeak.culturecontent.com/
http://unesco114.blog.me/110066207941
국립국악원,『종묘제례악』,서울: 국립국악원, 2006.
지두환, 『(세계문화유산) 종묘 이야기 』,파주 : 집문당, 2005.
김동욱, 『종묘와 사직』,서울 : 대원사, 1990
송지원 외1인,『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서울: 민속원, 2008.
국립문화재연구소,『종묘제례 』, 서울: 민속원,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