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조선 후기 문학 담당층 확대의 배경
3. 문학 담당층 확대 현상과 의미
4.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조선 전기의 문학 양상은, 왕조의 교체와는 관계없이, 고려 후기와 크게 차이를 두기 힘들다. 이는 고려 후기에 신흥 사대부가 모색하고 주장하던 문학의 방향이 조선 전기에 와서 구현되고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의 대부분의 문학 장르는 사대부 계층이 담당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 성행하던 문학 장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나타났던 문학은 무너지는 고려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쪽과 조선의 건국을 도모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나타났다. 이 시기의 문학은 주로 지배층의 한문학이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악장․경기체가․가사․시조 등 더욱 다양한 문학 장르의 창작이 활발해졌지만, 이 역시 사대부 중심의 문학 향유에 그치고 말았다. 이것은 당시에 창작된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악장은 새로운 왕조의 창건을 칭송하는 노래로 목적 자체가 이미 내용을 규정짓고 있었다. 경기체가는 우리말 노래이지만 한자 비중이 높고, 형식이 정형적으로 정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가사도 역시 은일가사나 유배가사가 많고, 충신연군의 내용을 담은 것도 있다. 시조는 신진 사대부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 출현하였다. 또는 사대부들의 풍류에 대한 내용이나 「훈민가」와 같이 백성을 가르치고자 해서 지은 것도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시조의 작자층에 기녀가 포함되기도 한다. 황진이, 이계랑, 홍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대부의 술자리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 전기 문학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주요 담당층은 사대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문학의 창작과 향유는 주로 사대부가 담당하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조선 후기의 문학 담당층을 살펴봄으로써 그 확대 현상을 확인하고, 그것에 따른 의미를 찾아본다.
2. 조선 후기 문학 담당층 확대의 배경
조선시대는 양반계층을 중심으로 중간계층, 상민계층, 노비계층으로 분화된 신분제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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