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불교
- 최초 등록일
- 2015.07.31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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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조선 초기의 불교
2. 휴정의 선 우위사상
3. 조선 후기의 불교
4. 숭유억불에 의한 불교계의 변화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통일신라와 고려조를 통하여서 불교는 대중에게 친근한 것이었다. 불교교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았고, 사원은 사람들이 머무는 동네에 위치하였다. 승려의 지위 또한 사회적으로 존중받았음에 틀림없다.
조선왕조의 초기에는 비록 유교이념을 내세웠지만 승려고시제도는 계속하여 실시되었으며, 불교적 유산이 생각보다 많이 지켜져 왔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종시대 휴정의 활동 이후로 불교는 산중으로 들어가서 이른바 ‘산승불교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므로 불교는 점차 사람들과 멀어져 갔으며, 승려 또한 도성의 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천대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를 시기별로 나누어 조선시대 불교의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려 한다.
<중 략>
2. 휴정의 선 우위사상
휴정은 조선조 중종·선조 때의 인물이다. 그는 서산대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21세에 출가하여 33세에 승려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바 있다. (원래 중종 2년에 승과제도가 폐지되었으나, 명종 때에 문정대비와 보우선사에 의해서 일시 승려고시가 부활된 것이다) 이후 그는 승려직책의 최고자리인 선교양종 판사에 임명되어 승려로서의 출세의 길을 달린다. 말년에 묘향산에 머물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선조로부터 협력을 부탁받고 약 5 천여 명에 달하는 승려군대를 조직하여 전쟁에 임하고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다. 휴정의 대표적인 저서에는 <청허집>, <선가귀감> 등이 있다.
휴정은 선을 교보다 더욱 중시하는 사상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먼저 선과 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의 취지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있는 데에서부터 말이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며, 선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없는 데에서부터 말이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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