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와 가야
- 최초 등록일
- 2015.07.17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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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고대국자의 형성과정
1. 성의 등장
2. 신라·가야의 형성
3. 백제의 형성
Ⅱ. 가야
1. 가야의 역사
2. 가야의 철기
3. 가야의 토기
4. 도질토기의 기원
5. 영남의 공통양식 토기들
6. 신라·가야토기의 분화
7. 가야토기의 문양과 투창형태
8. 가야의 주거
9. 가야의 묘제
10. 가야의 의례
본문내용
Ⅰ. 고대국가의 형성 과정
고고학적 국가단계 - 정치계층의 형성과 그들 무덤의 대형화와 거주공간의 차별화의 결과물인 성곽의 출현을 그 증거로 보고 있다.
1. 성의 등장
• 2C말 남부지방에서는 낙랑과의 전투, 소국간의 전투로 각국간의 통합의 기운이 활발히 일어난다.
• 철제의 갑옷, 기마용 마구의 성행과 토성의 등장-영남지역에서도 출현 이는 북방유목민족, 고구려의 영향으로 제작되었다고 추정, 기마전통 자체가 북방의 영향.
• 토성 - 평지의 중요 요충지, 전쟁이 본격화 되는 4C경에 등장.
ex) 백제의 풍납토성, 몽촌토성, 신라의 월성ㆍ달성, 가야의 봉황대
- 목책과 환호보다 기술적인 면에서 한단계 진전된 형태이며, 보다 적극적․항구적 방어시설.
ㆍ김해 봉황대 - 흔적확인이 불분명, 주위 대성동에 자리한 거대한 목곽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3C중∙후반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
ㆍ신라 - 4C대에 토성인 달성의 하부포함층에서 2~3C대의 구상유구와 목주가 확인(기존의 터에 조영된 것임).
ㆍ백제 - 도읍지인 서울의 풍납토성, 몽촌토성이 대표적이며, 몽촌토성 성벽절개조사에서 서진대(256~316)에 성행하던 회유전문도기(灰釉錢文陶器)편이 발견.
• 패총 - 비교적 가파른 구릉에 위치하며, 중요지점을 연결하는 방어 마을.
2. 신라∙가야의 형성
• 신라지역
- 2C 후반을 전ㆍ후하여 무덤과 출토유물의 내용에서 대변동이 일어남.
- 묘광의 평면이 세장방형인 목곽묘가 경주ㆍ울산을 중심으로 나타남.
→ 이들은 평면이 방형에 지역적 특색이 강하다.
- 경주의 목곽묘 : 유자이기(有刺利器), 궐수문철모(蕨手文鐵鉾)
- 철기의 의기화 : 세장방형의 경주식 목곽묘에서 궐수문철모와 같이 비실용적인 장식
- 2C 후반을 전후하여 경주∙울산지역의 묘제와 출토물은 가야지역과 영남내륙과 다른 양 상을 보임. → 이는 신라가 주변지역을 통합하여 영역국가로 성장하는 증거로 판단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