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인과 명치유신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5.06.01
- 최종 저작일
- 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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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관계를 논하기 전에 요시다쇼인과 명치유신의 정의를 내리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뒤 요시다 쇼인의 쇼인가쿠인과 명치유신의 관계를 논하고자 한다.
먼저 요시다 쇼인이란 일본의 사무라이, 교육자이며 메이지 유신 구성원들의 정신적인 스승이다. 그의 사상은 천황아래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의 속국화를 본격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요시다 쇼인은 기존의 교육자들과 달리 교육의 대상에 신분이나 남녀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존왕양이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는데, 나중에 이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된다. 일본 근대화의 일등 공신이지만 동시에 조선침략을 제창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중 략>
1881년에 일본에서 최초의 정당인 자유당을 만들었다. 또 다음해 오오쿠마 시게노부가 영국식 의회주의를 주장하며 입헌 개진당을 만들었다.
1889년, 메이지천황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독일 헌법을 모델로 하여 만든 헌법 초안을, 대일본제국헌법으로 공포하고, 다음해인 1890년 제국의회를 개설했다. 이 헌법은 천황 밑에 내각。재판소。의회를 두고, 행정。사법。입법의 3권 분립의 형태는 취하고 있지만, 천황 주권인 헌법이기 때문에, 내각은 천황에 대해서만 정치적 책임을 지고, 의회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 육해군은 천황 직속이기 때문에, 내각이나 의회도 이를 견제할 수 없다.
<중 략>
다카스기 신사쿠는 조슈 번의 근대적 군대를 창설했다. 이 군대는 제1차, 제2차 조슈 정벌과 보신전쟁에서 막부군과 싸운 존왕파의 주된 무력이었다.다카스기는 처음에 일종의 민병대인 쇼타이(諸隊)를 설립하였다. 봉건제 하에서 전쟁은 오직 사무라이 계급의 독점물이었으나, 다카스기는 이를 타파하고 모든 국민이 국가의 부름에 전쟁에 나서는 국민국가적인 군대를 구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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