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인물 강추자료A+) 영국 플리머스 형제회 -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의 일생과 간증, 기도로 성경읽기
- 최초 등록일
- 2015.05.30
- 최종 저작일
- 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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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의 터툴리안(Tertulianus)으로 일컫어지는 존 넬슨 다비는 아일랜드계로 1800년 11월 18일 리프 캐슬, 킹스 타운티에서 출생하였다. 진젠도르프 백작 출생 100년 후인 1800년에 태어난 그는 15세와 19세에 이르자 더블린에 이주하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다닐 때 존경과 우수한 성적을 획득하였다. 그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아일랜드 대법원에서 변호사로 잠시 봉직하다가 영적인 일을 담당하고자 1825년에 영국 국교회의 부제로, 그 이듬해에는 신부로 서품을 받았다.
존 넬슨 다비의 간증의 일부이다. "나는 교회를 찾았다 ... 또한 나는, 병적인 상상에 지배된 채 로마와 그것의 외적인 신성과 보편성과 전통을 많이 생각했었다. 나는 사도 시대가 완전히 계속되며 은혜의 통로는 오직 그곳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 략>
이들은 교파나 사회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토대로 하여 형제와 자매로 영접되었기 때문에 플리머스 형제 교회(Plymouth Brethren Assembly)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채프만(R. C. Chapman)이 반스테플에서, 크레익과 조지 뮬러가 브리스톨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고, 뉴톤의 매부이며 저명한 본문 비평가였던 트레겔레스(S. P. Tregelles)가 1836년에 영접되었다.
다비 형제님은 그리스도인의 간증(The Christian witness)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유럽 전역에 배포하였고, 1837년에는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1840년에는 불어를 사용하는 여러 교회가 형성되었다.
존 넬슨 다비의 간증의 정수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주님이 모든 것이심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오직 영광 중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만을 보며,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향해 관심하신 것만을 관심하는 기쁨이여!"
- 존 넬슨 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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